영적인 전쟁과 심리 전쟁의 소개와 역사: 영적인 전쟁과 심리 전쟁
순한 어린 양
"미래에는 우리가 구원을 이룰 시간이 결코 없습니다. 도전은 지금 이 순간에 있으며, 그 시간은 항상 지금입니다."
제임스 볼드윈
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은 삼위일체로 하나이십니다. 천국에 들어가 그곳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됩니다. 그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간단한지,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을 떠난 후 천국에 가기 위해 예수님의 피로 씻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기적처럼 믿기 어렵게 받아들입니다. 만약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죽음 이후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신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죽지도 못하고 시간을 되돌릴 수도 없고 구원도 받지 못한 채 영원히 지옥에서 불타고 있어야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고 해서 우리가 잃을 것은 전혀 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죄인인 우리 모두가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에게 기회를 주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세상에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셨고, 우리가 할 일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은 목자였고,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자 양이며, 이는 크리스천으로서 우리가 순진해야 한다는 진리와 닮아 있습니다. 부모의 아들이나 딸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그들에게는 항상 같은 자녀이며, 하나님도 우리를 똑같은 방식으로 바라보십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순진한 사람은 "인생도 사람도 모르고, 너무 착하고, 너무 어리석은 사람"으로 번역되고, 하나님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내 말과 명령에 따라 따르는 사람"으로 번역되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는 시각이 세상의 시각과는 다릅니다. 우리가 삶과 사람을 개념으로 본다는 것은 우리가 가진 현실적 지식의 범위에서 본다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따르기 위해서는 그것을 모두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언제 이 세상에 다시 오실지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 모두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마치 예수님께서 잠시 후에 다시 오실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지 못하면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나팔을 불며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결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구원받았지만 사랑하는 가족은 구원받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영원히 닦아 주실 것이고 지옥에서 불타며 가장 끔찍한 고통을 겪고 있는 가족은 영원히 우리 곁에서 잊혀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가족을 사랑한다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것을 다해 기도로 매달려야 합니다.
영적 및 심리적 전쟁의 씨앗
"당신이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먹지 말라'고 명한 나무의 실과를 먹었기 때문에 땅은 당신 때문에 저주를 받아 평생 동안 고통스러운 수고로 그것을 먹게 될 것입니다."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너를 위해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고 너는 밭의 식물을 먹을 것이다."
창세기 3장 17~18절
태초에 하나님은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셨고, 이 두 사람은 이 세상 역사상 최초로 살게 된 사람들이에요. 하나님은 아담을 먼저 만드셨고, 아담의 갈비뼈로 하와를 만드셨으며, 아담과 하와를 비롯한 나머지 인류를 흙으로 지으시고 입에 숨을 불어넣어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습니다. 흙이 닮은 것은 우리 모두가 본질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이며, 모든 사람이 이렇게 된 이유는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그들 이후에 태어나야 할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저주가 되었습니다. 이 죄의 씨앗이 드러난 이후 인류는 모두 벌거벗은 것을 부끄러워하게 되었고, 남자는 일하면서 땀을 흘리며 고생해야 했고, 여자는 아이를 낳을 때 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류가 일하면서 땀을 흘리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 것은 저주처럼 보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는 말은 말 그대로 쉬운 일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열정을 가지고 있거나 의미와 가치가 있는 모든 일에 적용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아름다움이 고통스럽다고 느끼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모두 존재해야 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가 땀 흘리고 고통스러워할 때 어떻게 느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저주는 신이 내린 저주가 아니라 우리의 본성 상태를 드러내는 것이며, 신은 우리의 본성대로 저주가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한 선악과 나무가 있는 곳으로 갔을 뿐만 아니라 뱀의 형상으로 변장한 사탄은 유혹의 계략을 써서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먹게 했고, 하와는 아담도 그렇게 하도록 유혹했습니다. 사탄은 하와가 자신의 유혹에 빠지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와를 이용하여 세상적인 심리전이 탄생할 수 있도록 하와를 유혹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사탄의 계략은 언제나 우리가 죄를 짓는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탄은 하와에게 그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치지 않았고, 심지어 아담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그 방법을 가르치며 유혹했고, 이것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상에서 가장 큰 화두가 될 정도로 큰 소리로 외쳐지게 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탄이라는 존재가 원래 지옥 아래에서 내려왔다가 이 세상으로 올라왔다고 오해하고 있지만, 아주 오래 전 한 때 사탄은 루시퍼라는 천국의 천사였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죄를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를 지옥으로 내쫓은 후 사탄 마귀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 구원을 받은 사람들의 영혼은 천국에 가게 되는데, 천국에는 죄가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뜻이지만 천사도 천국에서 죄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을 한 가지로 알 수 있습니다. 지난 세대의 시간에 하나님은 태양의 형상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셨고, 제자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에 따라 성경을 필사했습니다. 최초의 성경이자 최초의 성경은 킹 제임스 버전 성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보시기에 우리의 죄악에 대한 참여가 너무 무한하고 극단적이어서 한 사람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기회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마리아의 태에서 인간의 아기의 모습으로 태어나게 하셔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보여 주시고 온 세상에 전파하려고 하셨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래서 이제야 세상에 공개되는 중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실 때 아들의 형상으로 모든 인류에게 전파하지 못한 것은 기독교의 핵심인 현실의 기준과 복음을 지키려고 했던 행위가 잘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의 모든 것은 믿음으로 시작해서 믿음으로 끝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렇게 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에 따라 하나님의 제자들은 이미 예수님의 보혈로 구원받은 선택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임을 알면서 성경을 기록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이 산 절벽 위에 계실 때 사탄은 예수님이 정말 하나님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절벽에서 뛰어내려 천사들을 시켜 구하라고 했지만 예수님은 기독교의 핵심도 지켜야 했기 때문에 이를 거부하셨습니다. 사탄은 이미 예수님이 하나님, 하나님의 아들, 성령이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가 하려던 것은 기독교가 탄생하기 전의 역사를 바꾸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의 몸짓과 말투가 예수님과 똑같아 보이기 때문에 심리전과 영적 전쟁의 차이를 알기 위해서는 외면을 보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내면을 보아야 합니다. 즉, 예수님의 외적인 모습은 사람이나 자연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직 사탄에 대한 것이었고, 사탄은 이 사실을 세상이 절대 알지 못하게 하기 위해 마귀와 예수님의 몸짓과 말투가 비슷해 보이는 점을 이용해서 영원히 이런 모습을 유지하게 하려고 했고, 사탄은 그렇게 하면 영원히 위장되고 은폐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 세상에 계실 때처럼 사람들의 발을 씻겨주며 예수님을 본받으려고 해도 결코 예수님처럼 될 수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위해 애쓰셨던 예수님의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을까?"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로마 군인들에게 채찍질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손목과 발이 못 박히고 가시관을 쓰신 채 옆구리에 창이 찔려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으로 하신 말씀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십시오, 저들이 알지 못함이니이다. 이제 다 이루었습니다!"라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영적 전쟁의 방법을 아무도 모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때 영적 전쟁의 씨앗이 세상에 심어졌고, 하나님은 인류가 그것을 발견하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기독교의 전쟁 방식이 지금 공개되기 시작하여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한 이유는 코로나 팬데믹 바이러스를 궁극적 인 예로 사용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2000년이 되면 컴퓨터가 세상을 장악하고 세상은 '언제, 어디서' 종말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2023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예수님이 언제 이 세상에 재림하실지 아무도 모른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따라서 그 순간이 언제가 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비록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상 종말의 원인이라는 말은 없지만, 이를 볼 때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려는 마음에서 이 바이러스를 전 세계에 퍼뜨렸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길을 잃은 것은 과거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완전히 길을 잃은 것은 지금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라는 뜻입니다. 물론 과거에는 세상이 가난하고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심하고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잔인하게 살해당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그때는 도움이 필요해서 하나님 앞에 나아와 하나님을 붙잡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더 이상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진정으로 불붙는 기독교인의 신앙이 너무 적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실 때 그분은 목자였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순진한 하나님의 양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순진하다는 것은 인생이나 사람을 모르는 것, 속기 쉬운 것, 너무 착한 것 등 세 가지 의미가 있지만, 하나님께 순진하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주저 없이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런 유형의 사람들을 세상이 보는 것과는 다르게 보십니다. 세상은 우리를 업신여기거나 밟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에게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이자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가장 자랑하고 싶은 존재입니다. 성경 말씀대로 사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옳은 것처럼 보이지 않지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래도 순종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가 그분의 제자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주요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길은 예수님을 가장 친한 친구로 여기며 현실적으로 그분의 손을 잡고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야 할 정도로 가장 어려운 일이고 가장 외로운 걸음입니다. 하느님이 하느님의 아들이고 성령이시라는 것을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으니, 우리는 그저 이것이 바로 그것이라고 믿어야 하며, 이 점에 대해 세속의 많은 사람들은 비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며, 실제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런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확고하게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것에는 시작이 있으며, 그렇다면 "하나님은 언제 처음 존재하셨을까?"와 "그분의 첫 존재의 시간과 장소는 어디일까?"라는 질문은 우리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찾을 수 없는 질문일 것입니다. 영적 전쟁과 심리전 사이에는 매우 가느다란 경계가 있는데, 이는 우리가 조심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길을 따르다가도 어느새 다시 세속의 길을 따르게 되고, 일단 거기에 빠지면 더 깊은 유혹에 갇혀 더 깊은 수렁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길은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을 위해 사탄과 전쟁을 하는 것이며, 우리 편에 있는 천사들도 여기에 포함되며,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우리는 이것을 생활화해야 합니다. 브루스 리는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영적 전쟁을 아는 것은 단지 아는 것에 불과하지만, 이것을 삶에 적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쓸모없어지고 모든 것이 실패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우리가 사람들을 공격할 때 실제로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사탄에게 하는 것임을 보여주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탄을 눈으로 볼 수도, 만질 수도, 들을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종이기 때문에 목회자조차도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고, 또 그렇게 하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며, 설사 한다고 해도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들을 공격할 때 그들의 모든 반응, 태도, 행동, 상태가 사탄의 것이라고 믿어야 하며,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인류에게 지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사탄과의 전쟁에 임한다는 것은 사탄의 유혹과 속임수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말이며, 그 궁극적인 효과는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받음으로써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내세우는 무기는 성경에 포함된 모든 것이며, 모든 면에서 우리의 검이 되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분유 어플라이언스의 예술
"학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적용해야 합니다."
브루스 리
같은 인간으로서 우리 모두는 외모에 신경을 쓰지만, 어릴 때부터 외모에만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훈련받았습니다. 하지만 정말 자신의 이미지에 만족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개성을 만들어가며 계속 나아갑니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항상 정장을 입거나 대외적인 이미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기준을 사회에 드러냅니다. 때로는 자신을 내려놓고 남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한데, 그 이유는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들은 집이나 카페에서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신선한 공기를 마시러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글을 쓰고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또한 공부하는 학생이라면 주변 환경을 공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정리하고 배치해야 합니다.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모든 사람의 전략이 모두 효과적이고 우리는 그 누군가에게 눈에 띄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아무도 눈에 띄지 않거나 알려지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림자 속에서 움직이고 형태가 없는 것은 외부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반복하는 심리전 전략과 그에 대한 마음가짐이 전체 전쟁의 공식인 것처럼 우리의 마음입니다. 세상이 이 공식을 몰랐을 때, 이 공식을 알고 이를 잘 활용한 사람은 귀신같이 잘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소룡은 "물은 흐르거나 부딪히거나 물이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를 심리전에 적용하면 그 공식 자체가 우리를 물로 만드는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소룡이 모든 무술을 하나로 합쳐 종합격투기라는 무술을 창시한 전설적인 인물인 것처럼, 이 전쟁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카페, 세미나, 교회 등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는 상대방이 우리의 생각을 보지 못하고, 우리의 지배적인 마인드 파워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아무리 때려도 무너지지 않고 오히려 당황하게 됩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훈련하는 방식은 외부인에게는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이것이 실제로 완전한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미친 것이 아니라 경이롭게 잘 만들어진 마음이기 때문에 대중 다수에게는 우리를 신비하게 보일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어느 장소에 있든, 우리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있든 상관없이 지배적이라는 효과는 동일하기 때문에 전 세계와 싸우지 않더라도 어떤 상대와도 이길 수 있다는 최고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고 실제로 승리를 거둘 수 있습니다. 이 공식의 마음가짐에는 공격할 준비, 맞을 준비, 무너질 준비, 다시 일어날 준비라는 세 가지 준비가 있습니다. 우리가 100% 완벽할 수는 없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모두 운으로 보일 수 있고, 실제로 우리가 모든 것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연히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남녀 관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사랑의 무대로 보고 그것을 우리의 삶으로 만들어야 하듯이, 전쟁의 공식을 일상적인 생활 방식과 우리의 삶 전체로 만들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할 수 있을 때 세 가지를 모두 하나로 만드는 방법에 대해 말하는 것은 "우리가 계속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에 가깝고, 이것은 누가 대신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해야만 합니다. 이 공식을 우리 자신에게 적용하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혼자 있든 누군가와 함께 있든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마음 속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몸의 표현 언어만으로 승리를 달성하는 것을보고 그것이 말이되지 않으며 실제로 어떻게 그렇게 지배적 일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 공식 자체가 우리를 하나의 남자 또는 여자 군대로 만들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상황에 대해 우리는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고 어떤 순서로 일어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우연히 부딪히면서 계속 진행하므로 이러한 사고 방식이 우리 내면 깊숙이 있어야합니다. 문장 반복 전략은 주변에 상대가 없을 때도 사용하지만, 실제로 상대가 있을 때 훨씬 더 생동감 있게 느껴집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상상을 통해 감지하는 것을 얼마나 전략으로 믿느냐에 달려 있으며, 따라서 상상을 현실이라는 믿음으로 만드는 것은 그만큼 강력한 힘임에 틀림없습니다. 많은 경우 현실이 아닌 것이 현실이 되고, 현실인 것이 현실로 유지되거나 현실에 더 가까워집니다. 현실에서 현실이 아닌 것은 현실이 아니며, 상상하는 것이 현실에 가깝지 않다는 사실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되기 때문에 우리가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정말 잘생겼다고 해서, 모든 여자를 가질 수 있다고 해서, 같은 언어를 모르기 때문에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대화가 촉발될 수 없고, 언어를 안다면 잘 풀릴 수도 있지만, "현실의 사람이 어떻게 세상의 모든 언어를 다 알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생각하고 그냥 살아가는 것이 더 낫습니다. 그리고 남자가 잘생긴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성을 어떻게 느끼게 하는가이며, 이것이 여성을 진정으로 우리 편으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취업을 이 상황에 적용해보면, 아무리 일을 잘하고 아무리 좋은 학교를 나와도 여기저기서 거절당하고 한 사람이 동시에 모든 곳에서 일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실제로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는 사람은 상상력이 부족하고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텔레비전만 보는 사람보다 낫지 만 공상을 많이하는 사람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텔레비전 쇼의 영화 감독이나 책의 저자는 모든 상상을 대신 해주기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원하는 것을 볼 뿐이지만, 창의력이 발달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상상을 많이 해야 하고, 이것이 우리의 마음을 제대로 운동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ADHD 진단을 받은 사람들 중 창의력이 가장 뛰어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들은 사람들과 여러 번 대결을 해봤기 때문에 승패를 일찌감치 알 수 있고, 내면 깊숙이 전략을 얼마나 확고하게 세우고 준비하느냐에 따라 흔들릴지 안 흔들릴지가 결정되며, 상대방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정말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상황이 반대로 뒤집힐 때도 있고, 흔들리지 않았는데 혼자서 다 해냈다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사람 사람이라면 심리전의 세계에서 사람들이 악의적인 방법으로 우리를 공격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잃을 것이 없어도 그 사람들을 가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은 사고방식과 같은 개념의 눈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사고방식입니다. 이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는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의 조언을 듣는 것에 그치지 말고 직접 현장에 가서 경험해야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에 가서 긍정적인 감정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상태라면, 그것이 진정성이 있을수록 이를 알아차린 사람들은 결코 우리를 짓밟지 못할 것입니다. 경찰 형사가 범죄 현장에 가서 수사를 하는 이유는 그것을 자신에게 적용하기 위함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범위에서 사람들을 보기 때문에 때로는 검사나 변호사도 범죄 현장에 가는데, 이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죠.
해병대 정신
"두려움을 느끼면 어떻게든 해내세요. 그게 바로 정신력입니다. 겁이 나더라도 그냥 하세요."
브리 런웨이
많은 사람들이 군사 훈련과 심리전은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물론 머리를 깎게 하고 모든 훈련이 우리를 심리전에서 최악이 되도록 세뇌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훈련이 제공하는 멘탈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안다면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위치에 설 수 있습니다. 특히 해병대는 전 세계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집중력과 인내심을 길러주는데, 이러한 신병훈련을 경험하고 있다면 아무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마음을 키울 수 있는 기회의 기회라고 생각하여 자신에게 큰 장점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상대방의 폭격에 감정적, 심리적으로 괴로워하는 것은 상대방이 원하는 것만 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발생하기 때문에 상대방은 우리를 두 번 쳐다볼 필요도 없이 자신 있게 주변을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모든 전략 중에서 가장 큰 전략은 상대가 선택한 말이 내 이름에 오점을 남길 때 집중해서 정말 괜찮다고 믿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겨냥하는 화살은 사실이 아닌데도 억지로 사실이라고 믿어야 하는 거짓된 생각일 수 없으므로, 상대방에게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사실이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함께 있는 사람이 실제로는 상대가 아닌데도 진실이 아닌 것을 진실인 것처럼 착각하고 그것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도 합니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면 상대방이 원하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지어낸 이야기라고 말하고 화를 내는 것인데, 이는 우리를 더 불리한 입장에 빠뜨리는 것이고, 상대방은 이미 이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전략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상대방과 대화를 시작하려고 하면 마치 상대방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보일 뿐이고, 상대방은 이런 식으로 우리의 자신감과 싸움에 대한 의지를 사라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혹시 상대가 하는 말이 실제로 옳고 우리가 자기 얼굴에 침을 뱉는 상황에 처해 있다면, 상대가 하려는 것은 나쁘다는 것의 한계선을 넘어서도록 우리를 밀어붙이는 것이고, 상대가 누구와도 관계를 맺을 수 없도록 막으려는 것이죠. 그렇다면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 냉혈해서는 안 되고, 우리의 마음이 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악한 마음을 가지면 결국에는 약점이 되는 일만 하게 되고, 악한 마음이 없고 지배적인 마음을 가지면 의로운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쁜 사람과 사람들이 멀리하고 싶은 나쁜 사람의 경계와 비슷합니다. 적절한 훈련 없이 혼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군중 속으로 뛰어들었을 때 두려움은 단지 착각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 처했을 때 마치 아무도 없는 것처럼 고요한 물처럼 정서적, 심리적으로 평온할 수 있어야 준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군중 속에 있는 것이 가장 쉬운 부분입니다. 이를 위한 가장 효과적인 훈련은 무엇에 집중하고 귀를 기울여야 하는지 알고, 그것을 실제로 해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길 때까지 밀어붙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느끼고 원하는 것을 생각하고 믿는다면 이 세상에 우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공간에서는 모든 사람이 동시에 하는 말을 다 알아들을 수도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지럽게 뒤섞여서 듣는 것이 다른 상황보다 더 쉽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혼자서 산 정상에 올라가거나 경치를 바라보는데, 이를 훈련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분명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속이거나 놀라게 하는 것은 건방진 코미디 라인에서만 효과적이며,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이미지는 다른 사람에게 끌리거나 멀어지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끌릴 수 있습니다. 싸우지 않고도 이기는 것은 모두 우리의 몸짓과 말에 달려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답은 심리전의 전설적인 전문가가 프로가 되지 않는 방법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프로는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계속 거리를 두고 싶게 만드는 상황을 만들고, 그것을 드러내는 몸짓과 말이 너무 매끄럽지 않으면 그런 상황이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모두 상식적으로 주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고 있지만, 그저 내가 할 일을 하고 있을 때 상대방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속 공격한다면, 그것은 스스로 상대방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일 뿐입니다. 이것은 또한 함께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역할과 함께 자신의 기능을 돕는 역할도 합니다. 물론 우리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간은 누구나 심리적으로 지치고 약점이 있기 때문에 살아남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치면 쉽게 쓰러질 수 있고, 약점을 최대한 극복하지 못하면 상대가 우리를 쓰러뜨리는 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훈련 중에는 평화를 기대해서는 안 되며, 인내심을 키우고 약점을 극복하는 기술, 특히 생존을 위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모든 포격은 예상치 못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상대방은 우리에게 공격할 것이라고 미리 말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전략은 골치 아픈 혼란을 겪은 후 갑자기 다시 혼돈의 세계로 들어가 최대한 오래 버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이 이상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가장 이상한 것들과 방식에서 비롯되는 것이 바로 그 자체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가끔 조용한 환경에서 주변을 쳐다보지 않고 큰 소리로 말만 하면 누군가 조롱하듯 "이기기 위해서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냐?"라고 말할 때가 있는데, 이런 전략을 그냥 전략으로 보기 쉽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황 조작을 사용하는 사람은 내면에 두 가지 감정이 있지만 억지로 한 면만 보려고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사람의 내면의 감정을 아는 사람은 이미 그 순간에 승리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두 번째 내면 감정은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것을 더 힘을 주어 현실로 만드는 것, 즉 이기기 위한 전략일 뿐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상황을 조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여성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멋진 매력적인 몸매라고 하는데, 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바라보는 시각이 이렇다는 것입니다. 즉, 여성은 얼굴이 매우 아름답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남성에 비해 더 나은 얼굴 외모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남성이 매우 잘생긴 경우 다른 남성들은 여성을 끌어들이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싫어하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에 한심하다고 느낍니다. 잘생긴 남자는 심리전에 대한 지식, 지혜, 기술이 많지 않더라도 여성의 세계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사람과 함께 살면서 바비인형처럼 외모로만 인생을 보고 살았다는 사실은 언젠가는 발목을 잡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미리미리 준비하고 미리미리 개발하는 데 참여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세상은 해병대 훈련의 마인드를 심리전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감히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해병대는 두뇌를 쓰는 부류가 아니라 극한까지 물리력으로만 싸운다는 이유로 그들을 경시하고 멀리했습니다. 해병대 훈련을 통해 강인한 정신력을 키울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신전에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해병대에서는 전쟁터에서 전투에 대비해 무거운 역기를 얼마나 많이 들어 올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끔찍하고 고된 훈련을 견디고 이겨내면서 얻은 올바른 사고방식과 정신력이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군, 공군, 해군과 마찬가지로 해병대의 훈련은 신병들을 무너뜨리고 다시 일으켜 세우는 훈련인데, 해병대 신병 훈련소는 그보다 더 고도의 훈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육체적 근육을 키우는 무거운 물건을 드는 훈련은 많지 않지만, 모든 훈련은 심리적으로 지치고 힘든 활동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육이 엄청나게 큰 사람들도 해병대 신병 훈련만 맛보면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누구도 싸우고 싶은 존재로 태어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싸우고 싶은 충동이나 의지를 갖게 된 것입니다. 세상이 이렇다고 말하는 것은 심리전을 말하는 것입니다. 싸움에 있어서는 왜 싸우는지가 가장 중요하며, 그것이 승패를 결정합니다. 모든 사람들의 전략은 우리가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대신 전략적인 타격이나 폭격을 통해 그들이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 전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올바른 사고와 정신력, 마음의 힘, 삶의 방식에 대한 지식과 지혜를 소유해야하며 지식은 힘이되고 지혜는 우리의 길잡이가 될 것입니다. 사회에서나 가정에서나 군대 신병 훈련소로 떠날 준비를 온전히 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이 적절하지도 필요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동네 카페에서 정신무장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정신무장을 하는 것을 떠올립니다. 빵집이나 카페는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머무르고 떠나는 곳이고, 우리는 목적에 따라 한 자리, 한 곳에 머무르며 하루 9시간 정도 반복적인 일을 하면서 마음을 단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이 분야에 대한 마인드와 마인드 파워를 키울 수 있습니다. 커피숍에 머물다 보면 싸우고 싶지 않은 상황에서도 어쩔 수 없이 싸워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죠. 훈련하면서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고, 과목을 공부하고, 글을 쓰다 보면 모든 글과 상황의 승리는 저절로 따라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카페에서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고 비웃겠지만, 결국 우리의 승리와 그들의 성공의 승리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을 것입니다. 해병대 훈련에서 우리의 정신을 미치게 만들고 육체적 전쟁에 대비하게 하는 것처럼 카페도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정신을 미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여러 심리학 대가들은 카페는 일반인들이 모여 심리학에 대해 이야기하는 곳이라고 말하지만, 심리학 전문가라고 해서 이 분야에서 경이로운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많은 경우 사람들을 가장 많이 무시하는 사람들입니다. 심리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카페 안에서 일어나고, 우리는 그 안에 머물러야 하며, 이는 매우 간단한 훈련 방법이지만 견디고 승리의 의자에 앉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어렸을 때 심리전을 배우면 모든 상황에 대한 생각이 빨라지는 것처럼, 이 전쟁의 두 가지 공식을 적용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며, 그것이 완벽해지면 전투 준비가 된 상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초반에는 수적으로 크게 열세인 상태에서 카페에 혼자 있는 것이 두려울 수 있지만, 그래도 억지로 버티다 보면 적응하고 견디고 완전히 준비될 것입니다.
사탄의 속임수
"악마는 자신의 목적을 위해 성경을 인용할 수 있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사탄은 이 점을 악용합니다. 성경에서 이 성구를 볼 때, 우리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께 자신을 표현하게 됩니다. 교회 음악의 가사, 설교하는 목사의 목소리와 몸짓, 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수다를 떠는 교인들의 모습, 책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쓰인 방식 등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깨달음을 얻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든 교회가 이단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가 사람을 받침대에 올려놓으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님을 보는 방식으로 번역되고 그에 따라 하나님에게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한글로 '신'이라고 쓰거나 다른 철자로 쓴다면, 그 사람은 이미 민을 잃고 어리석은 믿음에서 이미 선을 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신은 절대 변하지 않습니다. 변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아무리 하나님을 거룩한 인물로 받들어 모셔도 그분이 우리를 어떻게 느끼시는지에 대한 감정은 언제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탄이 여기서 하려는 것은 영적 전쟁이 유일한 생명의 길인 것처럼 위장하여 영적 전쟁의 길을 은폐하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세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가 세속적인 생활 방식을 따른다고 해서 모두 사탄을 섬기는 것은 아니지만, 사탄의 목적은 우리가 그를 영화 롭게하거나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명령을 듣지 않는 것이 그를 만족시키는 모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증거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세상 역사상 두 번째로 이 세상에 재림하실 때,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모든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기 직전에 사탄이 마지막으로 비웃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사탄의 사교집단은 자신의 악한 의도를 감추기 위해 초림 교인으로 위장하여 교회에 들어오고, 성경을 이용하여 사람은 반드시 실패한다는 사실을 가지고 교회 교인들을 하나씩 빼낼 계획을 가지고 들어옵니다. 그들은 성경을 철저하게 공부하고 목적에 맞게 제대로 훈련받은 후, 교회 활동이나 교회 건물 내부 구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의도적으로 들어옵니다. 이런 유형의 사탄 사교 집단은 믿음이 없는 사람을 노리지 않고, 믿음이 불같이 타오르는 사람을 골라 화살을 쏘기 때문에 길을 잃은 사람을 쫓아갑니다. 그들의 전략은 "아무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교회를 떠났다고 믿을 수 있도록 결론을 내리는 것"이라는 사탄의 전술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일,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고, 믿음이 불같이 타오르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길을 잃은 자들은 혼란스러운 상태이므로 힘의 물결이 휩쓸어도 바로 쓰러질 수있는 작은 가지의 위치에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기독교 세계에서 길을 잃은 사람들을 목표로 삼는 이유입니다. 신앙이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기독교인을 천사의 모습으로 보지만, 막상 교회 생활에 발을 들여놓으면 그 모습에 큰 충격을 받습니다. 물론 세상에는 이단 교회도 많지만, 그 안에도 성령이 거하시고 매우 신실한 교회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나 다른 종교를 섬기는 사람들, 기독교 신자들은 언제나 사람들을 실망시키지만,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감정과 정신적 이미지
매일매일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사회에 나간다는 의미에서 천재와는 다른 방식으로, 다른 세상에서 적응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음가짐을 확고하고 단단하게 세우지 않으면 결코 충분히 준비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생이든 사람이든 자세히 보면 다 이상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 말 자체도 그렇지만 계속 보면 우리는 어떤 것에든 적응하고 적응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전략이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어도 때로는 감정적으로 느낄 때가 있지만, 내면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을수록 다시 적응하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자신을 잊는다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첫 번째는 자신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잘못만 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열정에 사로잡혀 자신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는 것은 지혜의 씨앗이며, 어떤 일에 열정을 가지고 작은 사람이 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의 선택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의 이치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자신을 볼 때 우리는 결코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세상을 관념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실제로 작은 자가 될 수 없고, 따라서 그에 따른 행동 선택도 진정한 지혜의 기준에 부합할 수 없다는 사실과도 일맥상통합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생각에서 출발하여 지혜로운 행동을 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하나님의 명령과 그분의 말씀을 따라 순순히 따르는 것, 즉 하나님의 순한 양이 되는 것이며, 우리가 옳다고 생각하거나 그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 자체가 항상 지혜의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우리 안에서 시작된다는 말은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되고, 그것이 감정적으로 어떻게 느끼는지에 영향을 미치고, 그것이 우리의 태도 선택으로 이어지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내면의 느낌에 따라 행동을 선택한다는 것입니다. 지혜의 법칙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 중 하나는 "소수의 사람들과 함께 있고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할 말이 없을 때는 조용히 있는 것이 우리를 바보로 만들지 않는다"는 것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은 그냥 침묵하면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그들에 비해 덜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고, 이 생각의 끝에는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그냥 말하는 것이 정말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간주 될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해 아무 말이나 하기 전에 우리가 지혜로운 존재가 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고 지혜롭게 행동을 선택해야 하며, 지혜는 지식처럼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부름을 통해 떠오르는 것이며, 마음속에서 느끼는 연결의 부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정적 감정은 생각한 후에 느끼는 것이 아니라 미리 느끼고, 상황이 심각할수록 현명하게 행동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한 다음 행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감정적 반응은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지혜의 눈의 범위에서 모든 것을 보는 것을 제2의 본성으로 만들어야 하며, 이를 위한 방법은 계속 강요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전략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상이 개념으로 살았다고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어떤 사람들에게는 심리 전략조차도 세상과 사람을 개념적으로 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강하게 다가올 때 우리는 먼저 생각한 다음 그에 따라 반응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반응하기 전에도 일종의 내적 이미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우리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감정적 감정을 통해 그것을 그림으로 끌어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악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그림자는 우리를 구할 수도 있고 불필요한 느낌일 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악하다고 느끼든, 친절하다고 느끼든, 유쾌하다고 느끼든, 그 감정은 모두 똑같은 방식으로 발생하므로 모두 그림자라는 범주에 속할 것이고, 이는 결국 사람들의 감정은 모두 똑같은 감정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림자라고 부르는 것은 믿음으로 그림자라고 부를 수도 있고, 믿음으로 인간 영혼의 무의식 영역에서 일어나는 존재를 인간의 영혼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일부 과학자들은 감정과 정신적 이미지로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조작 될 수 있으며, 이것은 이것 또는 저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감정으로 생각하는 것에 대해 언급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안 좋은 일을 겪은 후에도 우리는 계속 생각해야 하고, 그래서 계속 이렇게 억지로 밀고 나가다 보니 이것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고 적응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주려면 고통을 감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심리전의 세계에서 감정적 고통을 겪는 당사자인 우리가 그것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다면 승리했다고 말하기는커녕 오래 견디는 것조차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확고하게 고정되고 설정된 마음의 힘으로 이것을 밀고 나가야하며, 훈련 과정에서 아무리 노력해도"실제로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정신 장애가 있어야만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평범한 사람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염두에 두는 질문일 것입니다. 또한, 정신적 이미지로 사고한다는 것은 마음속에서 심리적 전략을 반복하는 것인데, 이를 심리전에 적용할 수 있는지 아니면 정신적 장애가 있어야만 심리전에서 성공할 수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할 것입니다. 복잡한 상황 속에서 심리전 전략을 만들 수 있으려면 천재가 되어야 하지만, 정신적 장애가 없더라도 누구나 심리전을 적용하고 적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전략이 우리 내면에 얼마나 깊이 자리 잡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헤어 디자인 기술을 배울 때 모두 열심히 노력해도 그 기술이 사람마다 모두 다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문장을 반복하는 전략은 모두 처음에 시작해서 어느 순간까지는 문장이지만 나중에는 그림, 단어, 글자가 없는 빠르고 짧은 이미지로 나타납니다. 이때가 바로 우리가 그것을 적용하고 적응해야 하는 상태입니다.
시의 핵심
"시는 감정이 생각을 발견하고 생각이 말을 발견한 것입니다."
로버트 프로스트
시와 랩의 차이는 삶의 표현이기에 그 기준의 차이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아름다운 것과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람마다 모두 다릅니다. 똑같은 사물을 눈으로 보더라도 느끼는 바가 다르고,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떤 사물에 대한 관점이 있을 때는 항상 그와 반대되는 또 다른 관점이 있다는 자연의 법칙을 배울 수 있습니다. 아름다움이 빛나기 위해서는 어떤 종류의 고통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은 고통스럽습니다. 우리가 경험한 고통에 대해 시를 쓰면 그 시를 읽는 사람들도 그 안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것입니다. 만약 고통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 의미와 가치는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현실에서 경험하는 고통과 시를 쓰면서 겪는 스트레스의 고통을 비교한다면, 현실의 고통이 더 지배적인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현실의 경험에서 느끼는 고통은 어느 순간 사라지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것을 기억합니다. 이는 두려움과 고통은 사라지지만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과 비슷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아름다움의 고통을 기억하고, 우리의 마음은 그 일을 기억한 다음, 그것을 어떻게 말로 표현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시를 쓰게 됩니다. 이렇게 높은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위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시의 기준을 확실히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문학 표현의 복잡성과 단순성의 차이를 알아야 합니다. 복잡하게 만들려고만 하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고, 쉽게 만들려고만 하면 수준이 낮게 느껴질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 정성을 다해 정성을 다하면 독자가 그것을 느낄 것이고, 그 때 비로소 완성된 명작이 될 수 있습니다.
더 작은 것
인종차별과 성차별이 심하고 전 세계가 극심한 빈곤을 겪던 시절에는 말과 몸짓 언어로 싸우기보다는 신체적 폭력과 죽음에 이르는 일이 훨씬 더 많이 발생했습니다. 이를 현대와 비교하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들이 폭력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 최하위 활동과 참여의 선택에 가깝습니다. 계급이 없던 세상은 모든 면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했고, 이제 우리는 인류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의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존재하는 군대를 보면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잔인하게 매를 맞고 극심한 고통을 감내해야 했지만, 지금은 법 안에 법이 있어 이렇게 자유롭게 살 수 있음에 감사해야 합니다. 인생 자체가 불공평하고, 너무 잘난 척한다고 고함을 지르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을 계속 억누른다면 폭력이 올 것을 예상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그 사람은 이미 마지막 카드를 다 써버린 것이고, 이후 어떤 행동을 하든 주변 사람들에게 부정적인 시각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누군가를 무시하지 말고 그 사람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진심 어린 관심을 보이는 것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이라는 사실과 닮아 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만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 행동은 무의미하고 가치가 없다는 의미에서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이 그 안에 포함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 본성은 우리의 상대였던 사람이 우리를 더 높은 인물 스승으로 존경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지배적 인 코끼리가된다는 것은 악한 마음으로 강하다는 의미이며, 우리가 사랑과 배려의 큰 마음을 가지고 그것에 대해서도 강력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우리를 공격하더라도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돌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즉, 우리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자신뿐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말과 몸짓의 폭격이 두렵다면 우리는 지배적인 마음의 힘을 키워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강하고 악한 마음을 가졌다고 해서 이런 폭격에 굴복하는 사람은 뼛속까지 큰 후회를 하게 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남성이 머리가 길고 여성스러운 경우 많은 사람들에게 심리전에서 깨지기에는 너무 약한 것처럼 보이고, 그래도 어느 정도 잘하는 사람은 많은 전략으로 세뇌하려고하기 때문에 지배적 인 마음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지배적 인 마음의 힘을 가지고 있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외부에서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를 작게 생각할 것이고, 그 상대를 불리하게 만드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아기 얼굴을 가지고 있고 나이에 비해 매우 어려 보이는 우리들의 경우, 어른들은 여전히 우리를 어린 아이처럼 대하고 젊은 사람들은 실제 나이에 따라 우리를 대하지 않으므로 우리는 더 강력한 마음을 훈련해야합니다. 30대인데 고등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으면 많이 늙어 보이고, 고등학생 때 나이보다 훨씬 늙어 보이는 사람도 어느 정도 나이가 지나면 똑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젊어 보이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 정신력 수련이 필요한 만큼의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에 의존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의 갑옷은 마음속의 문장 반복 전략이 될 것이고, 이 공식에 따라 말과 몸짓으로 공격하면 상대방은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면 누가 더 굳어진 마인드 파워를 가지고 상황을 이끌어내는지에 대한 줄다리기가 될 것입니다.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상대가 몇 명인지는 물리적 전쟁과는 다르며, 중요한 것은 상대의 숫자가 아니라 이를 통해 얻는 결과입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누군가와 함께 있든 없든 상관없고, 누군가와 함께 있지 않고 혼자 있어도 무기가 없어도 이길 수 있으며, 이것이 계속 유지된다면 우리는 일인 군대 또는 일인 여성 군대라는 이미지를 드러낼 것입니다.
솔직한 자기 표현
"바디랭귀지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우리는 말을 하기 전에 몸짓 언어를 사용했고, 대화에서 이해하는 것의 80%는 말이 아니라 몸을 통해 읽혀진다고 합니다."
데보라 불
브루스 리는 "정직하게 자신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현재와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거나 스스로 선택한 후 적응해 나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사람들의 눈에 최선을 다해 보이고 싶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누르려고 하고, 사람들이 우리에게 깊이 매료되는 과정이 시작되기도 전에 우리는 결국 미끄러지게 됩니다. 우리가 선택한 표현이 사람들을 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약한 정신력이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섹시한 자세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바로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귀찮고 짜증스럽게 여기고 부정적인 말과 행동으로 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되고, 현실의 진실을 받아들이면 패배하게 되는 것이죠. 반응하는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은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끌리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부정적인 방식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환상을 미리 봅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주변에서 연애하는 커플 중 서로에게 완전히 끌린 채 그 관계가 유지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패배 한 가운데서 광기 나 부정적인 신체 자세를 표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것을 통해 더 바닥에 부딪 힐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마음의 힘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마인드 파워를 개발하기 위해 군대, 수용소, 감옥, 기숙학교에 가지 않아도 바로 여기 사회에서 마인드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그만큼 강력하고 우리의 몸짓 언어가 주목받는다면 우리는 관계의 세계에서 큰 성공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깊은 대화의 결과
"궁극적으로 결혼이든 우정이든 모든 동반자 관계의 유대감은 대화입니다."
오스카 와일드
특히 고등학생의 경우 친구의 인맥이 엄청나게 많지만, 나이가 들면서 친구의 범위가 점점 좁아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과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고, 인간의 본성은 자기 중심적이며 어두운 면이 항상 밝은 면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부부가 결혼을 할 때, 누구도 앞으로 다가올 엉키고 얽힌 상황과 비참한 느낌이 걸림돌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지 않고, 다가올 좋은 시간 만보고 영원한 여행의 목적지로 바로 뛰어 들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어두운 면이 밝은 면보다 더 크다는 자연스러운 심리 때문에 결혼 후에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것보다 이혼하는 비율이 더 높습니다. 모든 관계는 결합과 이별이라는 과정을 거치는데, 이별에 조금 더 가까워지면 헌신적인 관계가 되거나 지치고 피곤해서 영원히 헤어지게 되는 것이죠. 여전히 헌신하는 사람들은 그 숫자는 적지만, 멀리서 깊게 모인 끝에 그들은 속박과 이별을 너무 많이 경험하여 이제는 모두 그것을 지나쳤습니다. 그리고 이 즈음에 커플들은 "우리는 서로에게 잘 맞았다", "이런저런 관계는 모두 가치 있고 의미가 있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이미지로 그려질 것입니다. "누군가와 한 번의 깊은 대화가 관계의 방향을 영원히 바꾼다"는 말이 있는데, 깊은 대화를 통해 친밀감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지고 그 이후에는 우리가 서로에게 표현하는 모든 것이 사랑의 언어로 번역된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정, 데이트, 결혼 등 말 그대로 모든 관계에 적용되며, 모두 같은 방식으로 적용됩니다.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
"소통의 가장 큰 문제는 소통이 이루어졌다는 착각입니다."
조지 버나드 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말하려고 해도 상대방이 이유 없이 계속 말을 끊는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세상 사람들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사람을 보는 방식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보지 못했기 때문에 잘못된 출발선에서 출발하여 시간이 지나면서 굳어진 결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과 관계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접근 방식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지만,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항상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은 그렇게 반응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누군가와 소통하기 위해서는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하기 때문에 닫힌 마음을 가진 사람일 수는 없습니다. 소통은 우리를 대화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마음이 닫혀 있다면 대화는 시작조차 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은 착각일 뿐이며, 우리가 예상하는 것 때문에 소통이 엉키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리더가 되고 싶어 하며, 리더는 자신이 가진 권력을 다른 사람에게 기꺼이 베풀고 공유하는 롤모델이 되어야 합니다. 이는 일이 어떻게 얽힐지 예견하고도 여전히 그 일에 관여하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이며, 삶의 흐름은 결코 한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지식, 그것이 무엇인가
"진정한 지식은 자신의 무지의 정도를 아는 것이다"
공자
다 안다고 생각하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가장 위험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나중에 후회는 우리를 비참하고 한심하게 만들면서 우리를 따라잡을 것이며, 시간이 오래 걸릴수록 더 강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것과 사람을 개념적으로 보아야하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볼 때 항상 어떤 종류의 지혜가 있고 항상 이런 식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많이 했든 적게 했든 간에 자연의 법칙이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서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에,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인생을 돌아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감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젊은 학생들을 비웃는 것이죠. 그런데 더 웃기는 것은 더 오래 살았으니 인생의 경험이 많다면 당연히 깨달았을 텐데, 오히려 부끄러워한다는 것입니다. 노인이 된 우리는 그 사람이 누구든 항상 모든 사람에게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을 낮추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비록 삶 자체가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하나가 될 수 없기에 일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더라도 노력을 접지 말고 해결의 길을 찾는 것이 옳은 일입니다. 우리 인생의 수명을 안다는 것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는 관념적 태도라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고요히'를 핵심 중심 마음가짐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그래도'가 있어야 하고, 의리 사랑 열정 헌신 존경이 마음에서 흘러나와야 관계의 세계에서 후회를 덜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얻으라고 우리 이름을 외치는 자연의 부름이 계시일 것입니다.
지혜의 길
"현명한 말은 종종 척박한 땅에 떨어지지만, 친절한 말은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
아서 도움말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우리가 삶과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에서 다음과 같은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은 기독교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며, 진정한 지혜는 성령의 음성을 듣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이 선택한 말과 행동이 지혜의 기준이 아닌데 어떻게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고는 마음속의 생각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지혜롭다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이 지혜롭지 않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지혜를 가진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지혜로운 충고를 하면 그 역시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불모의 땅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생과 사람을 개념으로 보기 때문에 진심으로 온화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세상이 이렇다고 해서 항상 착하기만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착하다고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세상, 아무리 세상을 많이 안다고 해도 분노나 분노만 가지고 세상을 살아갈 수는 없는 세상, 하지만 그래도 가끔은 진심으로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친절한 말을 건네는 순간이 있어야 합니다. 이 말을 듣는 사람에게는 복잡한 단어 표현이나 멋진 단어 표현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말하는 단어의 선택이 매우 간단하더라도 진심 어린 마음만 있으면 영향을 느낄 수 있고, 그것은 알 수없는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세상이 한 사람에게서 멀어질 때 진정한 친구가 한 사람에게로 걸어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이 친구의 말 한마디는 결코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것이 되고, 세상이 떠나갈 때 더 아플수록 더 소중하고 더 오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
"사람들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지 않을 때, 있는 그대로의 그들을 좋아할 수 있습니다."
도널드 밀러
사람과 관계에 대한 지식이 오히려 더 나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관계 전문가는 전문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책이나 사람들이 아무리 많은 조언을 해줘도 항상 완벽하게 잘 풀릴 수는 없습니다. 실제 이유 없이 효과가 없을 수도 있고, 이유 때문에 효과가 없을 수도 있으며, 반대로 효과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다음과 같은 상황을 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이고, 사회가 모든 관계의 드라이클리닝을 거칠게 하고, 그 와중에 우리는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을 마음에서 모두 지우면서 접근하고, 선한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모든 접근을 하게 되면, 그 다음에 선택하는 모든 표현은 내가 그 사람이 완벽하기를 바라는 상태임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것이 쌓이면 관계에 흰개미가 되는 것입니다. "자신을 아는 것이 모든 지혜의 시작이다"라는 말이 있는데, 이를 관계에 적용해보면 누군가의 실패를 그 사람의 잘못으로 본다는 것은 결국 나를 먼저 보지 못했다는 뜻이고, 이런 상태에서는 해결의 책이 될 수 없습니다. 관계에 대한 개념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절대 변할 수 없으며, 한 번 크게 화를 내면 이와 같은 상황이 다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계속되면 우리는 모든 것이 내 안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거나 모르는 어리석은 존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자동적으로 예견하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므로 문제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항상 자기 자신을 먼저 보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 여성들이 미국 남성을 좋아하는 모습을 여기저기서 볼 때가 있습니다. 이 여성들은 한국 남자는 친절함이나 젠틀함이 없기 때문에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미국 문화는 여성을 대하는 방식이 부드럽고 친절하기 때문에 미국 남성과 데이트를 하거나 소개팅을 하거나 채팅방이나 온라인 데이트 사이트에서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러한 커플 중 사회에서 만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이 아닙니다. 모든 관계에는 특징적인 패턴이 있으며 모든 관계는 무작위적인 순서나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이 있지만, 인생을 경험하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국 여성을 악한 방식으로 대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흔한 일입니다. 여성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 "저 사람은 데이트할 수준이 아니야"라는 식으로 되받아쳐서 완전히 흥미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남성은 다시 악한 방식으로 여성을 대하게 되고, 이런 일이 계속되면 여전히 긍정적인 방식으로 여성을 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결국 다시 악한 방식으로 여성을 대함으로써 자신의 더 나은 본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남성은 결국 한 가지 유형의 성격을 선택하게 되고, 보통 나쁜 남자 또는 나쁜 남자의 방식으로 여성을 대하는 경우가 많으며, 이를 오랜 시간 동안 지속하게 됩니다. 어느 나라의 문화를 막론하고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일어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 눈에 보이는 사회에서 미국 남성과 함께 있는 한국 여성이 그리 많지 않은 이유는 무엇보다도 한국 여성을 선수로 여기고, 그 대접을 받는 방식이 마치 산 채로 잡아먹힐 것만 같기 때문이죠. 나쁜 남자 또는 나쁜 남자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는데, 하나는 여성이 좋아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여성이 밟고 멀리하는 유형일 것입니다. 아무리 관계에 얽히는 상황이 있더라도 그것을 얽히는 상황으로 보지 않고, 모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버리고, 선한 마음에서 옳지 않은 것 같은 성격이 되는 것, 이것이 관계를 살리는 것이 될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상황을 얽힌 상황으로 보고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면, 앞으로의 말과 행동은 여성이 밟고 싶고 멀리하고 싶은 사람이 될 것입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가 여성에게 약점이 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서로의 필요성
"삶은 상호의존 없이는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며, 이를 빨리 깨달을수록 우리 모두에게 더 좋습니다."
에릭 에릭슨
우리는 삶을 보는 방식에서 사람을 보고, 사람을 보는 방식에서 삶을 봅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믿어야 할 때가 있고,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망을 가져야 할 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부유해도, 아무리 높은 학력을 가지고 있어도,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고 있어도,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있어도 사람과의 관계가 견고하지 않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의존하면 그 사람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는 것은 모두 시간의 손에 달려 있고, 이것을 아는 사람은 부정적인 범위에서 사람을 볼 수밖에 없고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리는 방식으로 사람을 대할 수밖에 없고, 이 현실을 이렇게 보지 못하는 사람은 장님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바보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 사람은 현명한 존재입니다. 마음속으로 사람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할 때에도 우리는 사람을 믿기 위해 힘을 써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결국 사람을 믿게 되는데, 이는 스스로 최면을 걸고 스스로를 바보로 만드는 방법이지만,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 힘입니다. "행복하지 않아도 계속 웃어라"라는 말이 있는데, 계속 웃다 보면 결국 행복해지듯이 사람을 믿도록 강요하는 것도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항상 효과가 있다면 아무도 도움을 구하지 않을 것이지만 실제로 효과가있을 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하여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에서 목적지를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친구가 나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 않았다면, 만약 내가 친구인데 돈을 갚지 않았다면 그것은 이미 출발부터 친구가 한심한 무력한 존재로 느껴지는 입장이었고, 게다가 돈을 갚으면 친구의 입장에서는 더 비참해질 뿐이라는 식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친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친구의 입장이 되어서 자신도 같은 일을 당했더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걸림돌이 되는 문제는 우리가 어떻게 보든 거기에 얽힌 문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감정적으로 친구를 경멸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즉 모든 문제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결과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친구와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돈을 빌려주는 대신 친구에게 돈을 주는 것이 관계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 사람이 필요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는 것은 마술처럼 억지로 강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연히 끌리면 어쩔 수 없이 끌리게 되고, 그렇지 않으면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계는 헌신으로 시작하고 헌신으로 끝납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곳에 가서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고립시킨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을 더 우울한 상태로 만들 뿐이며 장기적으로는 닫힌 마음의 존재로서 더 깊은 생활방식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있다고 해서 주변 환경에 사람이 없어서는 안 되지만, 세상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 않고 긍정적인 면만 볼 수 있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인류는 필요해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제품
"아무도 믿어주지 않을 때 스스로를 믿어야 합니다."
세레나 윌리엄스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면 전 세계가 우리에게 등을 돌릴 것입니다. 하지만 배신을 한 당사자는 그것을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든 배신이라고 생각하면서 누군가를 배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배신한다면 그 배신으로 인해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관점의 본질은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이는 방식에서 잘못된 방식으로 설명 할 수 없기 때문에 귀를 기울이면 믿을 수있게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믿으려면 긍정적인 생각을 중심 영역으로 삼고 그것이 우리의 지침이 되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가 여우처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런 식으로 일을 추진하면 파산하게 될 것이고, 그 이유는 장기적으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가 약점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해도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무도 믿지 않는다면,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우리가 자신을 믿을수록 상황이 더 강하게 반전 될 것이며,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자신감있는 존재의 상태가 그들을 깨닫게 될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설명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지막 상황은 "우리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등을 돌리고 모두가 우리를 손가락질하는 경우"입니다. 마음이 더러워지겠지만,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그런 짓을 했지만, 미안한 마음과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다해 다시 한 번 그 사람의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마음을 채우는 것,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자존감을 갖는 것입니다. 이것은 과거의 것을 버리고 현재의 것으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다른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나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멀리하고 싶은 나쁜 사람이 되느냐의 경계에 놓일 때가 많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은 우리를 망치는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생각을 지배하도록 훈련받아야 합니다. 남자가 다른 남자들과만 시간을 보내면 여자를 잘 모른다는 약점이 되고, 남자가 특별한 여자를 만나면 그 이후에는 남자가 여자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사실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남성이 여성을 전적으로 신뢰했다가 배신당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많은 젊은 남성들에게 남자는 좋은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이 간단한 한 문장이 인생 전체를 파멸로 만들 수도 있고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합니다. 말이 경주에서 훈련을 받을 때 옆으로 눈을 가리는 것처럼,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것을 잃은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의 기회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고 다른 것을 보지 않고 그 빛을 따라가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을 믿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하며, 믿을 수 없는 사람 때문에 자신의 삶을 망쳐 바닥을 치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포기할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패배의 고통
"패배는 95%는 마음의 상태와 태도이지 투쟁의 결과가 아닙니다. 우리는 싸우기도 전에 패배하기 때문에 심리전이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루카스 D. 샬루아 박사
인간은 완벽할 수 없기에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때때로 흔들리고 무너질 수 있지만, 그것을 끝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승리로 가는 디딤돌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는 우리의 패배나 패배를 강한 힘으로 끝이라고 생각하게 함으로써 이를 이용하려고 할 것입니다. 넘어지거나 무너지는 것은 괜찮지만, 한 번 넘어졌다고 해서 다시 일어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시 일어설 때는 마음의 상태와 태도가 적절하게 준비된 상태이며 투쟁의 결과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실패한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쓰러뜨린 후에도 계속 쓰러뜨리지 못한 상대입니다. 고통을 주려면 고통을 받을 수 있어야 하는데, 우리가 영원히 쓰러져 있기를 바랐던 상대는 이제 우리가 일어선 이후 우리를 상대하기 힘들어질 것입니다. 패배의 아픔을 모르는 사람은 이 세상에 오래 있지 않았고, 자주 이겼다고 해도 진정한 승리의 느낌을 경험할 수 없기에 그런 승리를 승리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싸우기 전에 무릎을 꿇는 사람은 사람도 아니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싸움을 시작하려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싸움을 예상하지 않았는데 싸움이 시작되고 결국 무릎을 꿇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면 그만큼 용기가 있다는 뜻입니다. 더 좋은 것은 싸움을 하겠다고 다가온 상대가 나를 인생의 교훈을 주는 스승으로 여기고 존경하게 된다면, 그 사람은 더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싸움에 나가기 전에 패배한다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잘 모르는 것을 모를 때 가만히 있는다"는 말과 관련이 있는데, 이 상황에서는 싸움을 제의한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고, 비록 졌더라도 이를 통해 인생의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우리를 무너뜨렸다는 것 자체가 우리가 저 사람을 지배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려워서 성급한 마음으로 우리를 공격하여 우리를 쓸어버렸다는 것, 즉 우리가 처음부터 그 힘을 붙잡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난을 통한 성장
"산다는 것은 고통을 겪는 것이고, 살아남는다는 것은 고통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니체
영적, 심리적 전쟁의 세계가 쉬울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집에서는 사람들의 폭격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전략을 사용하지 않고, 집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폭격과 자연 환경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상황에서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스트레스가 되는지 알 것입니다. 게다가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고 해도 여러 번 반복해야 하고, 여기에 바쁜 업무까지 겹치면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으니 쉽지 않은 일이죠. 비단 직장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쉬운 일에는 우리의 열정이 담기지 않았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로 볼 수 없으니, 정말 쉬운 일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름다움은 고통스럽다"는 말이 있는데, 세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것 같고, 그렇게만 바라보면 우리의 에너지가 고갈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두 전쟁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이것이 우리에게 계속 나아갈 힘을 줄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사랑의 에너지가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에너지라고 말하는 이유입니다. 다른 사람의 말과 몸짓에 전혀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심리적 문제를 발전시킬 가능성에 대한 노력 끝에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감정이 없으면 성공에 대한 모든 의미를 잃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야를 공부하든, 어떤 직업을 갖든 외롭고 귀찮아서 괴로운 것은 분명한 일이고, 사회에 나와서 다른 사람들의 눈앞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이 바로 그 때입니다. 우리가 심리전을 위한 훈련 과정을 밟을 때, 그 출발점으로 빵집이나 카페에서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은데, 그곳은 의도적으로 드나드는 사람들의 파도에 자신을 사로잡고 앉아서 심리라는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소, 그 자체가 최고의 특수 훈련 목적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전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이 이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최고의 훈련 장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 박사 학위를 가진 사람들은 흔히 "빵집이나 카페는 심리학을 모르는 사람들만 모여서 수다를 떨며 노는 곳"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이런 심리학 전문가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의 전문성을 키우는 훈련의 장으로서는 이 두 곳만한 곳이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이런 곳에서 8시간씩이나 시간을 낭비하느냐?"라고 말하며 우리를 얕잡아 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말처럼 달려야 하고, 그렇게 하면 나중에는 경이로운 방식으로 준비된 것 이상으로 발전하여 그들이 우리를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큰 차이가 날 것입니다.
플라톤 관계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우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열정, 적대감, 숭배, 사랑은 있어도 우정은 없다."
오스카 와일드
플라토닉 관계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모두 심리전 그 자체 때문입니다. 이 전쟁이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여성이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성을 끌어당기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성에게 성적인 매력을 느낄 필요 없이 그저 친한 친구가 되고 싶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경험 많은 여성들은 여성에게 필요한 것은 예쁜 얼굴이 아니라 멋진 몸매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원래 남자보다 훨씬 예쁘기 때문에 다른 멋진 여성만큼 예쁘지 않더라도 멋진 몸매는 큰 매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남자가 다른 남자 친구를 보는 모습을 머릿속으로 상상하고 여자가 다른 여자 친구를 보는 모습과 동일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서로 동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는 남성들도 게이 커플을 보는 것은 역겹다고 말하지만 레즈비언은 그다지 불쾌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성적인 남성의 비율은 적지만, 여성적인 남성은 인간은 성격이나 성격적 특징에 관계없이 자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사실에서 여성을 사랑합니다. 플라토닉 관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두 친구가 로맨틱한 방식이 아니라 게이와 레즈비언이 서로 사랑하는 방식처럼 성적 매력은 없지만 서로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플라토닉 사랑이라고 합니다. 이 모든 상황을 철학적 지혜의 범위에서 본다면, 플라토닉 관계가 가능하다는 것과 불가능하다는 것은 양쪽이 서로에게 이끌리고 어느 시점에서 충돌하는 타이밍 차이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플라토닉 관계와 연애 관계의 차이점은 성적인 접촉이 없고, 손을 잡거나 신체적으로 가까워져 성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으며, 욕망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지만, 이런 관계가 언제쯤 연애 관계로 발전할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욕망은 남자든 여자든 실제로 통제할 수 없는 감정과 생각의 힘이고, 그 속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플라토닉한 파트너와의 관계를 위해 스스로를 절제하는 것은 가치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다시 그 우정을 깨고 연인 관계로 이어지는 것 역시 가치가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에 다루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여성의 경우보다 남성은 일반적으로 여성과 친구로만 지내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이를 피하거나 차단하려고 하는데, 이러한 상황은 하루에도 여러 번 발생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한 남자는 친구라는 사실이 다른 생각을 압도하기 때문에 친구라는 생각으로 남자를 무시하는 느낌을 받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으며, 이 때문에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플라토닉 관계에서 발생하는 적대감은 어머니가 여러 여성과 관계를 맺는 데 너무 지식이 많고 숙련 된 아들을 미워하는 방식으로 평준화됩니다. 아들이 여성과 관계를 맺는 데 열정적일수록 어머니와 더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이유로도 남자가 여자에게 너무 많은 관심을 받으면 여자 친구는 분노로 인해 뚜껑을 열어 남자에게 끌리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우정을 유지하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이것은 긍정적인 증오가 부정적인 증오의 에너지로 위장된 것입니다. 이런 유형의 관계에서 남녀가 서로를 숭배하는 것은 남녀가 서로를 섬기는 연애 관계가 보기 드문 풍경인 이유와 동일합니다. 모든 관계에서 모든 것이 얽히고 설켜서 심리전이 불공평하다는 결과를 통해 관계에 있는 남녀가 서로에게 완전히 끌릴 수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플라토닉한 사랑의 선을 넘어 친구에서 로맨틱한 연애의 방식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같은 방식으로 그녀를 사랑하지 않으면 그녀는 상처를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다시 친구로 돌아가는 것이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이 반복되면 우정이 완전히 갈라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상황을 볼 때 남자와 여자가 실제로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지 여부는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가능하다고 말하거나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어떤 관점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모욕에 대한 두려움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실패를 보장하는 유일한 전략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크 주커버그
우리는 모두 "인생에 보장은 없다"는 말을 들었고,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위험도 감수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 선택인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조롱하거나 모욕하는 등 부정적인 방식으로 나를 대할 때 두려움을 느끼는 이유는 그것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운 것에 대해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서거나 피하지만, 한 번 그렇게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깨기 어려운 습관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옆에서 두 명 이상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나를 향해 달려드는 것을 보면 대화 상대도 없이 그냥 뛰어드는 것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지만, 훈련의 목적에 있어서는 장기적으로 보면 이길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예를 들어 차가운 수영장에 막 뛰어들면 도대체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막상 들어가서 조금 지나고 나면 수온에 적응했기 때문에 상상했던 것만큼 그렇게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 한 가지를 대비하고도 극복하지 못한다는 것은 심리전의 세계에서 가장 기초적인 것을 이겨내지 못했다는 것이고, 따라서 승리의 편에 서지도 못할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감정이 있고 언젠가는 감정적으로 상처받을 수 있지만, 이러한 상황을 훨씬 더 가볍게 받아들이겠다는 말입니다. 어떤 식으로든 비웃음을 받거나 욕을 먹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만,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갑옷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것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폭격을 가해도 선의 편에서 우리를 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우리를 부정적인 방식으로 대하는 것에 적응하려고하지 않고 그것을 피하는 방법 만 생각하기 때문에 그 뒤에 이유가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답은 인간의 어두운면이 항상 밝은면보다 더 크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지금 행복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우울해지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지금 우울하다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행복해지는 것이 더 나은지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두려움을 지금 극복하고 경험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마지막 순간에 극복하는 것이 더 나은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뛰어들 계획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단지 그것에 적응하기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의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두려움이 생각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두려움은 단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점이 오게 됩니다. 이것은 두려움 뒤에 큰 목적이 있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두려움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경험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는다면 다른 모든 것은 결론적으로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심리전의 세계에서 최고 수준의 학교를 나와서 경이로운 공부를 하는 것이 필수 요건은 아니며, 그런 것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더욱 돋보일 수 있는 승자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최고의 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이용해 우리를 모욕하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것은 승리를 위한 그들의 전략일 뿐이며 우리가 영향을 받지 않는 한 게임은 끝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밟으면 결국 고개를 숙이고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주는 것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길 때도 품격 있게 이겨야 하고 질 때도 품격 있게 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초반에 우리는 그동안 우리 안에 숨겨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놀라게 될 것입니다. 한 번 경험하고 한 번 적응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우리는 이 훈련 경험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겪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겪을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점에서 더 계산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며, 또한 다시 한 번 적응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라는 점에서 다시 적용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계속 뛰어들다 보면 결국에는 의도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는 것을 즐기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경험할 때 우리는 자신과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느라 바쁘다면 이런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정 시간 동안 혼자 있을 때 보통 이런 일을 시도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가능성이 훨씬 더 높습니다. 인간관계가 탄탄한 사람이 가장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이고, 친구와의 관계와 데이트 파트너와의 관계를 비교했을 때 데이트 파트너 세계가 더 성공적인 사람이 항상 더 행복한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혼자여도 밝은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연애 파트너와 함께 성공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가장 큰 보람을 얻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상대의 폭격에 두들겨 맞기만 한다면 그것을 극복하지 못해 또다시 무너지고 쓰러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삶의 목적을 잃게 될 것입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은 짧은 기간 동안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들이 성공에 한 발짝 더 가까워지는 동안 우리는 더 큰 재화를 놓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환상적 위험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정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실패를 보장하는 유일한 전략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크 주커버그
우리 모두는 무언가에서 지는 것을 두려워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 번 졌다고 해서 다시는 승리할 수 없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패배를 단지 하나의 과정으로 보고 눈을 가리는 대신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상대는 우리가 이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자체가 상대 입장에서는 전략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패배의 아픔을 딛고 일어선다면 그 이후부터는 상대가 우리를 상대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더 큰 거래를 할수록 그들은 더 세게 밟고 또 밟을 것입니다. 현명한 복싱 코치들은 상대에게 고통을 주려면 우리도 고통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이는 인간은 누구나 패배할 수 있고 패배할 수 있는 존재이며, 최선을 다해 쓰러졌을 때 마음의 힘으로 쓰러뜨리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상대가 나를 다루기 힘든 상황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복싱 코치들이 흔히 하는 말인데, 한 번 쓰러진 후 다시 일어나지 않으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 번 일어나지 않기로 결정하면 다음 기회로 미루는 아주 나쁜 습관이 되고, 시간이 지날수록 이 습관은 더 강해져서 역전 모드로 전환하기가 더 어려워진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배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결코 정당한 승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강해지면 그 사람은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나중에 그 사람에게 약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엇이든 자신을 단련한다는 것의 본질은 대다수가 평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 자체가 정상입니다. 사람들이 열심히 싸우고 있는 한가운데로 뛰어든 사람을 보면 '이 사람은 그런 일을 하기에 조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이런 생각이 우리를 보호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군대에서 신병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에 충분한 훈련을 받지 않고는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수 없듯이, 우리도 실시간으로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훈련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 뛰어들면 새로운 세계에 적응할 수 있지만, 상상으로 훈련하는 것과 실제 생활에서 훈련하는 것을 비교하면 그 결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납니다. 수영장의 차가운 물은 직접 들어가 보지 않으면 절대 적응할 수 없고, 들어가면 우리 몸과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운 방식으로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 갇히게 되면 상상했던 것만큼 나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그렇게 두려웠는지 스스로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두려움은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피할수록 더 많은 것을 피할 수 있으며, 가장 큰 위험은 바로 이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영적 또는 심리적 전쟁에서 최고인 사람들도 때때로 정서적, 심리적으로 흔들릴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을 최종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보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흔들릴 때가 있고, 그 흔들림 속에서 크고 강한 힘으로 승리하는 것이 패배하고 패배하는 것보다 훨씬 덜 위험할 수 있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는 것은 발전과 닮았다는 것이고, 이 두 분야가 우리 모두의 진정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함께 발전할 수 있습니다. "힘이 클수록 책임도 커진다"는 말이 있듯이, 두 분야에서 모두 세계 최고가 되면 한 사람에게서 배우기를 원하고 배워야 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책임도 함께 지게 됩니다.
로맨스의 희망
"부랑자, 신사, 시인, 몽상가, 외로운 사람, 항상 낭만과 모험을 희망하는 사람."
찰리 채플린
거지에게서 연애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은 거지는 거의 하루 종일 한 자리에 있고, 지나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많은 일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마트의 계산원들은 담배 한 갑을 사기 위해 매장에 들어오는 미성년자가 여러 명 있는데, 이런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니 아이들이 몰려오기 전부터 이미 심리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준비된 자세를 취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 제스처의 반복을 통해 로맨스에 대해 배우려면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중요한 부분은 말과 행동보다 몸짓으로 표현하는 방식이 훨씬 더 중요한데, 이는 우리가 선택한 말이나 행동에 에너지나 생명을 부여하기 때문입니다. 로맨스의 세계에는 꽃미남, 젠틀맨, 나쁜 남자의 세 가지 종류의 남성이 있습니다. 이 세 종류의 수컷은 매일 서로 경쟁하며 승리의 왕좌에 앉기 위해 서로를 쓰러뜨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세 가지 특성을 모두 가진 남성의 경우 성격 장애가 있는 것으로 오해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 귀찮아하거나 불편해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의 자아가 된다는 것은 최고의 자아가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관계에 대한 지식과 지혜가 없이 겉모습만 보고 멀리 내다본다면, 관계의 시작 단계부터 어느 정도 단계까지는 여성에게 자신의 잘못을 간과할 수 있지만 결국에는 불리한 입장에 놓이게 될 뿐입니다. 많은 한국 나이 든 여성들이 한국 남자는 여자에 대한 친절이나 배려가 없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여성에게 너무 잘해주는 것이든, 너무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든, 여성을 짓밟는 방식으로 대하는 것이든 모두 결론적으로 얽힐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의 법칙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것은 인생에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거나 너무 많은 일을 할 때 그 결과는 나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즉, 남자로서 여자를 잘 안다는 우리의 지식은 옳지만, 여자에 대해 잘 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이런 엉뚱한 상황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여성에게 잘해주려고 해도 얽히는 상황이 어떻게 될지 예견하고, 그것이 여성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데 걸림돌이 되고,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인생의 어느 시점에는 항상 후회가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시인은 효과를 기대할수록 더 현명한 행동을 선택해야 합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지혜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처럼 웃음거리가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효과적인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하더라도 항상 효과가 있는 100% 방탄 방법은 없으며, 때로는 효과가 있고 때로는 효과가 없는 낚시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꿈을 가지고 있고, 그 꿈은 모두 심리전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그 이유는 심리전이 우리 모두의 삶의 방식이며 따라서 우리에게 생명을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의 범위가 좁아지는 것은 삶과 사람을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좋은 면보다 나쁜 면이 항상 더 많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따라서 한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지만 이성과의 관계 구축에 탁월한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과적으로 동성과는 관계를 구축하지 않고 이성과만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우리를 정의하는 것이 우리의 과거라는 사실에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 데 가장 능숙한 사람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므로, 우리는 장난기 어린 마음가짐으로 이런 식으로 계속 밀어붙이면서 모험을 한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용서의 자세
"용서만큼 완벽한 복수는 없다."
조쉬 빌링스
우리는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에게 이해가 되는 것은 우리에게 잘못을 저지른 사람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함으로써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렇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을 했을 때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옳은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잘못된 일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양쪽 모두 자신이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용서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상대방이 보기에 우리가 더 나은 일을 하고 있다고 자랑하려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우리에게 더 우세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따라야 하지만, 상대방이 우리의 진심을 약점으로 받아들일 것을 예견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전심으로 순종하기가 어렵습니다. 때때로 같은 나라 사람들이 서로 다투거나 싸우는 풍경을 보며 궁금해하고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정말 서로 싸울 것 같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놀라는데, 이는 인생이든 사람이든 자세히 보면 모두 이상하다는 사실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관점에는 항상 다른 측면의 관점이 있으며,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항상 서로 다투거나 몸싸움을 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세상에 법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우리 사이에 항상 법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상대방이 우리가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용서한다고 생각할수록 상대방은 우리를 내려 놓아야한다고 느낄 것이며, 이러한 생각과 감정이 없으면 복수는 결코 복수가 될 수 없습니다.
사회주의
"사회주의는 실패의 철학, 무지의 신조, 시기의 복음이며, 그 본질적인 미덕은 불행을 평등하게 나누는 것입니다."
윈스턴 처칠
심리전을 벌일수록 인류 사이에서 더 큰 권력을 쥐고 있기 때문에 세상은 그 사람으로부터 이 분야에 대해 하나라도 더 배우기 위해 법을 어기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이것이 한 사람에게 문제가 되는 이유는 세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한 사람에게는 세상을 돕고 있는데도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를 부정적인 문제로 받아들이면 받아들일수록 어깨에 더 큰 짐이 될 뿐입니다. 공산주의 국가를 살펴보면 그 나라 시민에게는 자유가 없고 정부가 자신의 집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허용되지만, 민주주의 국가의 시민에게는 이것이 큰 잘못으로 여겨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실패한 철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이런 일을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을 통해 그 너머를 바라보면, 그런 일을 할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부정적인 문제라고만 생각한다면 세계는 계속해서 같은 방식으로 밀어붙일 것이고, 이에 맞서 싸우는 우리의 말이나 행동은 세계로부터 경멸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가진 힘이 클수록 책임도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에 따라 살아야 하며, 세상적인 심리전에서 세상을 선도한다는 것은 망할 수밖에 없는 길을 택한 것이고, 영적인 전쟁에서 세상을 선도한다는 것은 인생의 목표를 이룬 것이므로 성공했다는 뜻이 될 것입니다. 인생에서 가치 있는 일이라면 이 세상에 쉬운 것은 없으며, 깊은 고난의 고통을 통해 아름다움이 드러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전쟁이 케이크 산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왜냐하면 다가올 고난은 다가오고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입니다. 세속 세상의 전쟁 방식은 잘못된 싸움이지만 사탄과의 전쟁은 정당한 전쟁이며,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사탄과의 전쟁에서 아름다움과 가치를 느껴야 합니다. 사탄과 싸우기 위해서는 사탄과 그의 속임수를 잘 알고 있어야 하며, 영적 전쟁을 통해 사탄을 물리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존재는 율법을 만든 사람도, 손으로 율법을 가지고 노는 사람도, 율법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최고의 참된 지혜를 소유한 사람, 즉 그리스도인입니다.
성숙한 사랑
"사랑에는 항상 광기가 있습니다. 하지만 광기 속에는 항상 이유가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
관계에는 두 가지 종류의 광기가 있는데, 하나는 서로 미치게 사랑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말 함께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얽히고설킨 문제가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결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함께 살면서 항상 서로에게 헌신해야 할 위치에 놓이게되는 상황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헌신적인 상황은 관계를 고려할 때 가장 어려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우리가 아내를 사랑하는 이유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으며, 얽히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논리적인 이유 없이 그냥 일어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 아무리 깊이 생각해도 정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부부가 서로에게 크게 끌리지 않는 경우가 많고, 부부싸움을 할 정도로 서로를 미워하지 않는 상황도 다른 때에 비해 훨씬 더 많습니다. 관계의 세계에서는 인생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그냥 거기에 있고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유지되는 유일한 이유 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항상 20대이고, 성숙한 사람은 심리전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 성장하고 또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숙한 사랑은 여러 번의 얽히고설킨 상황과 약속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나중에 보면 그냥 지나간 일로 여겨지지만, 결국에는 함께 있는 동안 겪었던 모든 얽히고설킨 상황과 약속이 결국에는 모두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연애 이야기에는 해피엔딩이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아무리 사랑이 성숙해져도 얽히고설키는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성숙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부유한 마음
"생명은 다른 생명에 미치는 영향을 제외하고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키 로빈슨
우리가 보는 방식은 우리의 삶을 행복으로 채우고 채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인생은 숨을 몇 번 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숨을 쉬는 순간이 중요한데, 인생을 넓게 바라보고 나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면 우리 곁에 아무도 없게 되고, 결국 가난한 마음으로 파산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는 논리적으로 생각해보면 우리가 누군가를 존경하면 그 사람은 결국 나를 덜 사람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고, 우리 자신도 자신을 그렇게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 자신을 먼저 돌보는 것이 당연히 옳다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서 우리는 친구, 가족, 적 또는 낯선 사람이든 상관없이 서로에게 폭격을 가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더 가까워지거나 더 많은 적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나쁘게 대할 때 우리는 항상 내가 가진 것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라는 긍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지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받아들이면서 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이것은 우리가 타고난 자기 중심성을 우리 자신에게 유리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과 싸워 이길 수 없다면 이러한 행동이 옳은 선택입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향한 부정적인 표현이나 말이나 행동을 할 때마다 우리는 항상 그 사람이 우리를 항상 받아들이고 항상 우리에게 잘해준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실패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이렇게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 관계의 방향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든 부정적인 방향으로 바꾸든 우리는 이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은 아니지만, 우리는 이렇게 사는 것을 제2의 자연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잊지 않고 이것을 믿는 한, 우리는 큰 마음을 가진 상태와 위치에있을 수 있으며 현실에서 그것을 실현할 수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든, 우리가 항상 그 사람을 사랑한다면 이것이 불행에서 벗어나고 우리 마음을 진실하고 건전한 고요한 평화로 채울 수 있는 원인이 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전적으로 의존
"5마일을 힘차게 걷는 것은 불행하지만 건강한 성인에게 세상의 모든 약과 심리학보다 더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폴 더들리 화이트
어떤 사람들은 누군가가 우리를 끔찍하게 대했다면 그 사람에 대해 무엇을 어떻게 느꼈는지 적고, 다음 날 아침에 자고 나서 그 글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깨달음과 감정이 떠오를 것이라고 조언하기도 합니다. 이 방법은 때로는 효과적일 수 있고, 때로는 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때 효과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운동할 때처럼 억지로 나가서 힘차게 걸으면 회복에 효과가 있을 확률이 높지만, 때로는 이런 방법으로도 효과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약을 통해 스트레스를 받는 감정을 조절하는 것은 일시적인 효과일 뿐입니다. 건강한 사람이 이러한 약을 복용하면 건강할수록 효과가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격렬한 운동에 비해 더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것은 특히 어린이나 아주 어린 사람들보다 성인에게 훨씬 더 많이 적용됩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우리는 고난을 견뎌낼 때 우리 자신이나 전략, 약에 의존하지 말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우리 어깨에 있는 짐을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독교는 우리가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진정으로 믿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기 전이라도 이미 응답받은 것처럼 믿고 그에 따라 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조언과 지식은 약과 같이 일시적인 효과만 있을 뿐, 온전하고 참된 회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항상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만, 우리가 생각하거나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경우가 많으며, 이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영원히 성장하고 있으며, 이는 하나님께서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우리보다 더 잘 아신다는 사실에 근거합니다. 누군가 우리를 무례하고 가혹한 방식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그분의 말씀에 따라 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모의 아들이나 딸로서 우리는 항상 부모님 눈에는 호수에 홀로 떠 있는 어린아이일 것이고, 하나님도 이렇게 우리 모두를 영원히 같은 모습으로 보실 것입니다.
악은 폐허로 다가온다
"악의 승리(위대한 업적 또는 승리)에 필요한 유일한 것은 선한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에드먼드 버크
우리가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에서 마음을 비우고 여성을 악의적으로 대하는 다른 남성을 보게 되면, 우리는 결국 그 남성을 인간 이하의 존재로 여기고 도대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세상에 있을 수 있는지 궁금해집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그것이 실제로는 지나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 중에도 여전히 사람을 그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는데, 이런 사람들이 바로 선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선한 사람들이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맞서 싸울 때 악한 쪽은 실패와 파멸에 이르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선한 면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악행을 생각하면 결국에는 여전히 여성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고 이런 식으로 밀어 붙이는 것을 자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 중 소수의 사람들은 여성들이 경멸하고 멀리하고 싶을 정도로 지나치게 악한 마음을 품게 될 것이고, 결국 스스로 바닥까지 추락하게 될 것입니다. 악한 마음만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으며, 분노와 증오를 품고 사는 것은 나중에 인생의 길에서 우리를 질식시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남성이 여성을 가혹한 방식으로 대하면 결과적으로 여성은 선한 마음을 가진 남성과 함께 있기를 원하고 선한 마음을 가진 남성과 함께 있으면 결국 남성에게 관심을 잃게됩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정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두 가지 일이 계속 이런 식으로 계속 반복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관계에서 얽힘에 대한 방탄 해결책은 없으며 항상 순조로운 항해 모드처럼 잘 지낼 수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마음이 악할 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된 존재의 상태이며, 긍정의 빛으로 생각할 수 있고 그것을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우리의 마음이 지배적이어야 하고 우리의 마음은 착한 마음을 가져야 승리의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것입니다.
강화된 사고방식
"인생에 충격적이고 놀랍게도 사람들이 찾아옵니다. 경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던 상실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거절당할 수도 있고, 그 거절에 대처하는 방법과 다음 날 일어나서 계속 나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테일러 스위프트
사람들이 우리 삶에 놀라운 방식으로 들어온다는 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에도 남성에게 먼저 다가오거나 관심을 보이는 여성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여성은 남성이 먼저 다가오는 것을 선호하는데, 세상이 많이 변해도 이 진리는 변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여성이 먼저 접근을 하면 이미 여성은 지는 편이고, 여성보다 훨씬 우위에 있는 남성의 경우 남성이 대신 해주기를 원하고 기대하기 때문이죠. 이는 문화, 전통, 종교와는 전혀 관련이 없으며, 전 세계 어디에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에 가깝습니다. 결혼한 커플 중에서도 이혼하거나 별거 중인 커플의 비율이 훨씬 더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관계는 헌신을 통해 유지된다는 사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한 사람과의 관계가 나빠지면 우리는 방금 겪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똑같은 상황에 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관계를 유지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이고 우리는 그 상황에 뛰어드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여성에게 거절을 당하는 일은 여성과의 관계 구축에 있어 전설적인 사람이라도 여러 번 겪게 되는데, 이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일단 발생하면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순간에 우리는 자신을 훈련하는 방법을 잊지 말아야 하며, 이 훈련은 두뇌 운동을 통해 자신을 올바르게 세뇌하는 것입니다. 이 훈련은 여성에게 다가가 진지한 관계를 맺기 전에 먼저 해야 하는데, 여러 여성에게 접근해 대화를 시작하면서 우리의 마음이 정당하고 필연적으로 미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거절당하는 횟수만큼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감정적으로 덜 고통스러워지고 여성을 다른 사람과 똑같은 인간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거절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며, 자신을 사랑한다면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여성과의 관계 구축에 참여해야 합니다. 거절을 당하는 것은 사귀기 전뿐만 아니라 결혼해서 함께 사는 동안에도 수없이 일어날 수 있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매우 괴로운 감정적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Wise One
"제 자존심은 재산과 함께 무너졌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혜로운 사람들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이 결국 지혜의 눈높이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식과 지혜는 어떤 것을 안다는 것의 의미에서 구분할 수 없으며, 사람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은 사람을 잘 모르는 사람보다 더 잘못된 결정을 내리고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신과 의사나 심리학자들은 사람을 전문적으로 잘 아는 사람들로, 많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선도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들이 내담자나 다른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을 보면 실망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입니다. 의도적으로 위선자나 나쁜 본보기가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잘못된 방식으로 말과 행동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않고는 결코 지혜로울 수 없기 때문에 진정한 지혜는 성령의 음성이 우리의 생각으로 번역되는 것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안다는 것은 진심으로 믿는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며, 우리가 그것을 믿게하기 위해 보여줄 증거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오직 믿음으로 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지혜의 시작은 자신을 아는 것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자신을 먼저 본다면 관계의 세계에서 어떤 방식으로 일이 얽혀도 다른 사람이 문제라고 볼 수 없고,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자신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스스로 억제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식이 곧 힘이라는 생각을 먼저 내세워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면 결국 그렇게 하지 않게 됩니다. 심리전의 시대에는 학력이나 지위가 높다고 해서 사람들이 비웃거나 밟고 지나가는 방식이 달라지지 않으므로, 사람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해서 이 문제가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이 비웃음을 당하는 것은 지혜로운 사람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고, 그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분노를 표출하고 복수를 하는 것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존심과 함께 자신의 모든 것을 땅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추측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옳다면 그것은 운이고, 우리가 틀렸다면 그것은 인생에 보장이 없다는 사실에 포함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대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상상력뿐입니다.
레이디스 맨
"내 여인을 위하여. 그녀가 모든 노력과 건강, 우정에서 성공하기를, 그리고 그녀가 숨을 거둘 때까지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지 않기를. 내가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그녀가 항상 알기를."
케이티 에반스, 레이디스 맨
여성들이 다른 어떤 유형의 남성보다 갱스터 워너비를 더 좋아한다고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갱스터 워너비는 여성들이 좋아하는 나쁜 남자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법이지만 마음은 여성처럼 부드럽습니다. 조폭들은 조폭 워너비를 무시하는 태도로 대하고, 반대로 여성들은 이런 남성들에게 거울에 비친 자신을 이용해 조롱하고 잔소리를 하지만, 이런 남자나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조폭 워너비를 이용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낮은 수준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고 해서 여성들이 우리에게 관심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성이 어떤 유형의 남성을 좋아하는지 정확히 알면 모든 것이 머릿속에서 이해가 될 것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관계가 얽히더라도 이런 종류의 남성은 다음과 같은 말과 행동을 선택하는 것이 훨씬 덜 과격하기 때문에 관계가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조폭은 분노 문제의 경계를 넘어 여성을 질식시킬 정도로 분노를 표출하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잘 풀리지 않습니다. 여성이 원하는 모든 것을 해주거나 원하는 모든 것을 사주면 문제가 되고, 이럴 때 여성을 대하는 방식은 여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상식적으로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여성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연애 스킬이 뛰어난 남성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런 유형의 남성은 장기적으로 여성을 질식시키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얽히고설켜서 여자가 좋아하는 친구 같은 남자에게 너무 거칠게 대하면 오히려 여자를 밀어내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대다수의 사람들이 플라토닉 관계를 믿지 않는 이유입니다. 만약 여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다른 남자를 더 좋아하고 계속 다른 남자에게 가고 싶어한다면, 우리는 때때로 그녀를 놓아줄 때를 알아야 합니다. 이것은 그녀가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숨을 쉬지 않는 것과 비슷합니다. 여자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데도 억지로 곁에 두는 것은 여자 남자로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이며, 인생의 모든 일이 우리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알아야 합니다. 그녀가 행복할 수 있도록 그녀를 보내는 것은 경이로운 남자이자 높은 기준을 가진 남자입니다. 그 여자가 우리의 깊은 속마음을 모르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진정한 숙녀의 남자이며, 이것이 문제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실을 바꾸지 않습니다. 만약 그녀가 우리의 품으로 다시 돌아온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그녀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며,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당연한 일입니다.
리더십
"나는 양이 이끄는 사자 군대가 두렵지 않고, 사자가 이끄는 양떼가 두렵다."
알렉산더 대왕
종합격투기 프로 선수 두 명이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 한 쪽이 패배해야 경기가 끝나는데도 양쪽 모두 자신만만해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우리 모두는 사람을 개념적으로 보는 매우 고집스러운 습관이 있고, 사람을 이런 식으로 보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순진한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상황은 이렇게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경험 많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그런 종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지만, 다시 보면 다시 한 번 놀라게 됩니다. 세상이 그들을 밟을수록 순진한 사람의 마음과 정신은 더욱 강해집니다. 해병대에서 훈련받은 해병대원들이 그렇듯 사회에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딪히고 얽히면 문제가 되고,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폭력을 사용하는 것이 첫 번째 행동으로 습관화되어 있습니다. 심리전의 세계에서는 상대가 누구든 누구나 강하게 공격할 수밖에 없고, 가볍게 공격하더라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전략적으로 강하게 공격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사자처럼 대담해지기 위해서는 이러한 상황에 바로 뛰어드는 것이 생활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일단 이러한 상황을 피하면 항상 피할 수 있고, 한 번 바로 뛰어들면 항상 뛰어들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것은 기본 단계이자 매우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반복적으로 수행하면 우리도 용감해지고 용기가 생기며 두려움이 거의 없어질 수 있습니다. 사자는 소수의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경우 악의 지배와 악의 지배는 관계의 얽힘으로 인해 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해피엔딩이 없다는 사실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이 작은 집단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데, 서로의 곁에 남아있는 소수의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여러 차례 반복되는 얽힘과 헤어짐을 통해 멀리 내다보면 이대로는 멀리 갈 수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이 사자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데, 양이 그렇게 하려면 마음이 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양이 그렇게 한다면 결과적으로 양과 사자는 잘못된 첫 걸음을 내딛게 될 것이고, 따라서 양을 조롱함으로써 양과 사자가 헤어지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어차피 헤어질 군대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양떼를 이끄는 사자가 올바른 마음가짐과 마음으로 서로의 곁에 바르게 머무는 것, 올바른 지도자의 자리에 앉는 것, 그것은 사자 자신이 사자 군대를 다룰 수 있다는 사실과 함께 자신에 대한 보험을 가지고 있는 것과 닮아 있습니다. 보험은 양들의 우두머리 사자가 높은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사자들이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우리는 추종자로서 양들의 군대를 가진 사자를 두려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들은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든 사자의 말과 명령에 따라 듣고 따를 뿐이며, 이는 곧 무너질 사자 무리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불순종 개구리
"과거의 역사, 기원, 문화에 대한 지식이 없는 민족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마커스 가비
부모가 자녀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는 우선 지식이 없으면 대화조차 할 수 없고, 무엇보다도 사회에 나가서 적절한 사회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공부하는 것이 조롱거리가 되는 것이라고 쉽게 생각하며, 마치 유행처럼 학교를 그만두는 것이 멋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공부밖에 모르는 괴짜라고 가르치지만, 나중에 인생에서 보면 말 안 듣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사람은 괴짜라고 가르칩니다. 말썽꾸러기 중 말썽꾸러기 중에서도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생은 극소수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공부 못하는 말썽꾸러기 아이들에게 롤모델이 되는 존재가 됩니다. 마치 잘못된 군중의 길을 걸어야만 나중에 인생에서 새롭게 변화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처럼 어깨에 칩을 얹고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보다 인생의 절반을 더 살아왔고, 수많은 인생 경험과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더라도 부모가 알고 있는 것이 많기 때문에 당연히 자녀보다 인생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 사실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아이들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릴 정도로 고집을 부립니다. 그들은 부모가 거리 생활을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이런 식으로 보이더라도 어린 아이들은 나중에 인생을 더 많이 경험하고 나서야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우리의 과거 역사와 기원, 문화를 모른다는 것은 우리나라 국민의 삶뿐만 아니라 전 세계 인류의 삶을 모른다는 것이며, 이는 우리의 과거가 현재의 우리를 규정짓는다는 사실과도 닮아 있습니다.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하는 삶을 사는 것이 가장 의로운 삶이지만, 죄악된 세상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같기에 부모님이 간절히 원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스승과 제자
"결혼 상담에서 많이 발견하는 것 중 하나는 남편이나 아내가 자신의 영적 갈증을 배우자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 것인데, 이는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라고 생각합니다."
맥스 루카도
성경에 기독교인은 기독교인과만 결혼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많은 사람들은 신앙이 다르면 함께 살면서 관계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이렇게 사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에 기독교인 아내 또는 남편과만 결혼하는 것이 옳다고 믿습니다.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관계를 롤러코스터처럼 휘몰아치게 하는 모든 얽힘은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삶의 방식이기에 차별화할 수 없기 때문에 이것만 옳다거나 그르다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세속의 부부뿐만 아니라 기독교 부부들 사이에서도 이혼한 부부가 이혼하지 않은 부부보다 더 많고, 이런 식으로 끝나는 신분이 많다는 점에서는 모두 똑같습니다. 세상 역사를 보면 하와가 아담에게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유혹한 사실이 세대를 거쳐 온 세상에 뿌려졌기 때문에, 부부 중 한 사람이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을 보면 아내나 남편이나 사실 이런 식으로 되지 않게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 돕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함으로써 죄가 저주가 되어 세상에 던져졌다고 말하는 것은 죄가 왜 그리고 어떻게 저주인지에 대한 바로 그 이유가 모든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는 이 지점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도적으로 죄를 짓기 위해 이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사탄은 이것을 우리 인간이 볼 수 없는 거울에 비친 모습으로 이용하고, 여우처럼 뒷문으로 바로 걸어 나가서 전혀 관계가 없는 것으로 남겨두고 싶어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 사탄을 여우라고 부르는 것도 어렵습니다. 사탄이 실제로 어떤 일을했다고 말하는 것은 단지 믿음의 문제 일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참된 그리스도인은 순한 양이 되는 것이며, 어차피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데도 아내와 남편이 같은 기독교 신앙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원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살지 말아야 할 삶이 아닌 것은 그리스도인이 살지 말아야 할 삶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그리스도인 부부라면 세상은 우리를 알지 못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반드시 아실 것이며, 중요한 것은 그것뿐입니다.
연하 남자친구
"구하는 사랑도 좋지만, 구하지 않는 사랑이 더 좋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과거 세대에는 여성들이 젊은 남성보다 나이 든 남성을 선호했습니다. 한 나라의 문화가 만들어지고 변화하거나 발전하는 방식은 모두 어느 날 갑자기 갑자기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대목에서 '그냥'이라는 단어가 가장 눈에 띕니다. 새로운 세대의 여성들이 외출을 하고 연하남과 데이트를 시작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날씨가 시작되었다가 그냥 멈추는 것과 동일합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누가 차를 운전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누가 계산을 하는 것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나만을 위하는 것이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 같지만, 대가를 바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더 잘할 걸 그랬다고 스스로에게 말하며 후회하게 됩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여성에게 너무 잘해주면 그녀가 그것을 약점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이것이 우리가 온전히 사랑에 빠지는 것을 제한하는 이유입니다. 문화의 변화를 개념적으로 보려면 받침대 위에 올려놓느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따라서 나이가 많다고 해서 무조건 사랑해야 한다는 관념이 갑자기 젊은 남자와도 관계를 맺는 것으로 바뀌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과거에는 남성이 운전할 때 여성이 옆 조수석에 앉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지만, 현대에는 여성이 대신 운전하는 것이 드문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상황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상황에 적응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상대방은 이를 약점으로 삼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전략적으로 우리를 대하는 말과 태도를 통해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가 이 문제로 힘들어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를 생각하고 그것에만 집중하는 것이며, 이것이 우리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일 것입니다.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이며,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반드시 실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이 한 가지 생각에 마음의 에너지를 집중하면 상대방은 우리를 무너뜨릴 무언가를 찾아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우리를 공격하든 우리가 하는 에너지 조절은 모두 같고 그 효과도 같으며, 이 마음의 힘을 얻는 것은 말로는 쉽지만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데이트하는 여성에 비해 나이가 어릴수록 상대방이 자신의 승리를 위해 우리의 나이를 약점으로 삼을 때 더 현실적이고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훨씬 더 강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의 전략에 패배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은 나이가 많다고, 학력이 높다고, 직위가 높다고, 돈이 많다고 하는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경이로운 지혜를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데이트하고 사귀는 여성과 함께 자신을 보호 할 수 있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더 큰 사람이 될 것입니다.
수줍은 사람
"말이 아닌 몸짓과 목소리 톤이 가장 강력한 평가 도구입니다."
크리스토퍼 보스
몸짓은 말보다 더 큰 소리를 낸다는 말이 있습니다. 보디랭귀지와 목소리 톤을 결합하면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것이 거짓된 표현이라면, 우리가 그것을 표현하는 상대방은 그것을 부정적인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우리가 선택한 표현에 대해 더 정직할수록 그것은 긍정의 편에 서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사람을 읽는 기술만 있으면 그 이상은 기대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의 내면에는 크고 어두운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이 능력을 갖기를 갈망하는 것만으로도 크게 후회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자기 중심적인 존재이며,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자기 중심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더더욱 자신이 하는 일을 하고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인생 자체가 시작부터 불공평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잘 알기 위해서는 다른 데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연법칙의 개념을 알아야 하고, 이를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심리학을 공부하든 성경을 공부하든 이것이 고정되고 정리된 기준이 된다면 모든 것이 쉽게 미끄러지고 빨려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인생을 공부하려면 다른 책을 읽는 대신 성경을 공부해야 한다고 조언하는데, 이처럼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관계의 법칙인 인생의 개념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우리의 롤 모델이자 관계의 스승으로 여겨야 합니다. 수줍음이 많다면 사람을 읽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 사람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 부끄러워하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두려움이 크면 클수록 생각하고 집중하는 것조차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읽기 위해 이 두 가지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심리적, 감정적으로 놀란 상태에서는 상대의 몸짓과 목소리 톤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에 자신을 관리하는 것조차 힘들어지고, 부끄러워하는 한 그 안에서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수줍음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와 대화를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드러낸다고 해서 모든 것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큰 실수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수줍은 사람을 격려하고 잘 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을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 같은 방식으로 대하면 결국 자신의 수준이 그 정도밖에 안 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수줍음을 많이 타는 사람을 밟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에 실패하지 않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며, 우리는 사람들에게 원한을 품고 미워할 것이 아니라 수줍음을 극복하기 위해 그들을 이해해야 합니다.
관계의 법칙
"멘토링은 선택할 수 있는 두뇌, 들을 수 있는 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밀어주는 것입니다."
존 C. 크로스비
여성은 조언을 해주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딱딱한 태도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여성이 매력을 느끼기도 합니다. 멘토링의 방식은 일종의 상담 분야라는 점에서 라이프 코칭과는 다르지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명령하는 스타일이 훨씬 더 많다는 점에서 다릅니다. 저자가 책을 쓰거나 지혜의 명언을 인용할 때 어떤 사람은 리더십이 무엇인지 드러내는 반면 다른 사람의 스타일은 친구 같은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이는 마치 민주주의가 공화주의와 다르며, 소수는 공산주의를 대표하고 훨씬 적은 수의 사람들은 공산주의가 일종의 지나친 악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이를 연애 세계에 적용하자면, 한국 여성과 미국 남성이 한국 환경이나 미국 환경에 들어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주는 압박은 압박하고 계속 압박하는 가혹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인생이 공평하지 않고, 자연의 법칙을 통해 인생이 한 가지 흐름으로만 흘러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상황이 항상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멘토링이 두뇌를 고르는 일이라는 것은 어떤 마음가짐, 어떤 스타일의 멘토링을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남성과 여성의 차이점은 남성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혼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내면에서 해결되는 반면, 여성은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함께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존재라는 점입니다. 남성이 보기에 여성이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 할 말이 많아서 귀를 기울여야 한다면, 그 여성은 그 남성을 편한 친구 같은 사람으로 생각해서 흥미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여자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는 여성이 이 문제에 대해 얼마나 간절히 이야기하고 싶어 하느냐에 따라 효과의 결과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성을 스포트라이트에 올려놓고 그녀의 말을 계속 들으면서 여기저기서 우리가 여전히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 그녀의 내면이 새로워지고 우리가 그녀의 말을 모두 들었다는 것을 깨닫게되면 그녀는 우리도 우리의 말을 듣고 싶어 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의도하는 방향으로 그녀를 가리키면서 그녀가 말하는 것을 연마 할 수있는 귀를 갖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을 보고 우리를 바보라고 생각하겠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우리가 아닌 바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기 때문에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이 사실조차 깨닫지 못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 더욱 더 바보가 될 것입니다.
평화에 대한 생각과 관찰
"전략에는 생각이 필요하고 전술에는 관찰이 필요합니다. "
맥스 유베
우리 모두 "침묵은 금이다"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오랜 지루함이나 심한 스트레스는 이 문제를 유쾌하지 않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항상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먼저 보지 않고 외부의 모습만 보는 것처럼, 아무도 자신의 생각을 보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 생각합니다. 또한 침묵이 주는 평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위아래로 사람들로부터 폭격을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에 감사하지 않습니다. 감사하지 않을 때 감사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감사하지 않을 때 평화를 느끼라고 강요할 수도 없습니다. 즉, 우리는 특정 상황이 닥쳤을 때 우연히 감사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느끼도록 안내하는 것입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여러 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과학자들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생각이나 아이디어가 어디에서 오는지 실험해왔지만, 여전히 달을 바라보는 개처럼 단서를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기원을 모르더라도 신이 우리 모두에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는 생각하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지만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생각이 어디에서 왔는지 증명할 수는 없지만 여전히 그것이 사탄이나 하나님의 목소리라고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진정한 삶의 방식은 우리가 항상 하루 종일 생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심리적 전쟁이자 영적 전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탄과 하나님의 음성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어떻게 우리의 생각으로 번역되는지 증명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는 합리적으로 쉽습니다. 세속의 세계와 기독교 또는 영성의 세계를 비교할 때, 세상의 방식이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를 줄 것 같지만 결국 우리 안에 거하시는 것은 성령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마귀와의 딜레마를 겪을 때 너무나 쉽게 깨어지는 존재이며, 우리가 이를 확실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음성이 우리 머릿속을 맴돌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 가지 방식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우리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생존을 원하기 때문에 생각의 패턴이 다양하지 않다는 점에서 생각의 패턴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평화를 경험하는 방법은 무한히 많지만, 우리의 생각 패턴이 원하는 방식은 생각 패턴이 무한히 많더라도 몇 가지 방법만 선택하고 그 방법을 고수하는 것입니다. 간단하지만 복잡한 방법으로는 "행복하지 않더라도 계속 웃으면 행복해질 것이다"와 같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 간단한 방법은 실제로 우리를 여러 번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놀라운 효과가 있지만, 효과가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직장에서 사회로부터 폭격을 받으며 긴 하루를 보낸 후 집에 돌아와서 평화를 느끼는 것은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하나는 우리가 마땅히 누려야 할 것이거나 실패한 것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평화를 경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를 모두 깨닫는 것은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두 가지를 모두 받아들이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자연스러운 마음으로는 정신 전쟁에서 견딜 수 없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한 한 쪽 관점으로 감각을 연마하도록 마음을 훈련해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 될 것입니다. 부정적인 감정은 평화로운 순간을 보내는 데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에너지의 이면을 경험한다고 해서 지치지 않지만, 부정적 에너지는 분명 지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전쟁은 죄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을 통해 악한 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생각으로 감정을 이끌고 그에 따른 행동 선택을 하는 것은 우리의 삶 전체를 진정으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악한 방식으로 지배해야만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긍정적인 생각과 에너지로 지배적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생존자입니다. 우리는 내면에서 평화를 느낄 수 있는 전략을 세우기 위해 고민해야 하며, 전술은 그 효과를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관찰을 필요로 합니다.
정당한 전투
"정의를 옹호하거나 기본 가치에 대한 관심을 촉구할 때마다 영적 전쟁을 예상해야 합니다. 빛이 어둠과 싸우는 문제일 뿐입니다. 하지만 매번 빛이 승리합니다. 빛에 어둠을 던져 꺼뜨릴 수는 없습니다."
토마스 킨케이드
의를 옹호하고 기본 가치를 외쳐야 한다는 사실이야말로 기독교인의 길이 매우 외로운 길인 궁극적인 이유일 것입니다. 이는 기독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는 동안에도 마찬가지여서, 기독교 교파가 여러 개이고 그 안에도 다양한 종교와 이단이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미나를 하거나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모임을 가질 때도 같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속 세계에는 민주당, 공화당, 공산당 등 다양한 정당 그룹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어느 나라에서든 서로 다르지만 제한된 관점 때문에 전 세계가 이런 식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렇게 분열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의 완전한 전체로서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한 관점과 다른 관점이 충돌하면 어느 순간 문제가 불거질 수밖에 없고, 어떤 것에 대해 하나의 관점이 있으면 항상 다른 관점이 존재합니다. 이것은 세상에 엄청나게 강력한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 자연의 기본 법칙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확고한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건국된 국가들조차도 우리 세대는 전 세계가 진정으로 길을 잃은 시대입니다. 우리는 세계 역사상 가장 발전된 세대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발전으로 인해 가난, 노예제, 인종차별, 성차별, 잔인한 전쟁을 경험하던 과거와는 달리 더 이상 하나님을 찾고 그분께 매달리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즉, 인류가 이만큼 세상을 발전시킨 것에 대해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지만, 기독교계에서는 특히 현대에 이르러서는 우리가 충분히 했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정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점에서 복수와 정의를 비교해야 합니다. 점점 더 극단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면 그 차이가 무엇인지 구분할 수조차 없습니다. 세상이 자기 방식대로 심리전을 펼치며 길을 잃었을 때에도 누구에게나 선한 빛은 있습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좋은 파트너가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반드시 헤어지게 되므로 악인의 길은 망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은 매우 사실입니다. 우리는 모두 삶과 사람을 개념적으로 볼수록 죄악된 행동에 이끌릴 수밖에 없고, 두 개의 악한 세력이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룰 때 그 개념은 장기적으로 서로 함께 있는 것을 큰 문제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겉보기에는 빛의 편이 다른 빛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선한 마음에서 생명과 사람을 보는 개념은 우리가 그런 악한 일을하게하는 원인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빛의 편이 서로를 높이는 방법이며, 결국에는 항상 승리합니다. 죄는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모든 사물과 사람을 보는 관념적인 사고방식 때문에 항상 실패한다는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일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국가에 테러리스트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을 보면 세상은 여전히 선의 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빛과 어둠의 편에 있는 것은 말 그대로 우리 모두에게 동일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종교를 섬기든, 무신론자이든, 사이비 종교이든, 기독교인이든 상관없습니다. 직장에서든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속적인 발전이 필요한 시기에 자신의 직장, 공부하는 장소, 교회를 진지하게 생각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개념이 모든 인간관계에서 얽히고설킨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고 해도, 우리 대부분은 자신을 서로에게 실패한 존재로 보는 법을 배웠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유형의 긍정적 사고가 세상을 돌고 도는 원동력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나라를 위해 일어서서 싸우는 선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싸움의 권리를 위해 일어서는 기독교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스트 어 퓨 굿 맨'이라는 기독교 노래가 있는데, 소수의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정말 한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성경 말씀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합니다. 다만 이런 종류의 사람들의 수가 적은 만큼, 실제로 하나님을 순종하는 추종자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적다는 것입니다. 세속 세계에서는 국가의 충돌이 물리적 소유물이지만, 그리스도인에게 충돌은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살지 않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사회로 나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지만 세상의 방식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기독교인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시로 거부당하고 심지어 조롱당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세속적인 방법과 영적 전쟁의 방식으로 말씀을 가르치는 그리스도인의 방법의 결과일 것입니다. 거부감은 어느 시대에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단지 접근 방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나 밟히고 닫힌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길을 잘못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역사상 수많은 나라의 몰락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불로 뜨겁지 않은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대표하며, 그들의 실패가 세상에 퍼져 세속의 사람들이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세상이 사탄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가는 동안 영적인 길은 알려지지 않은 순간에 빛으로 드러날 것이며, 그보다 더 높은 모습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얼마나 많이 아는지, 사람을 얼마나 잘 아는지, 인생을 얼마나 잘 아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기 교만이나 자기 지식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자신의 길을 간다는 것은 우리 안에 계셔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선택한 방식과 표현을 사회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다고 생각할 것이고, 따라서 거부할 때 자신이 옳은 일을 했다고 믿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진하게 계속 사랑을 베풀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면, 처음에는 어느 정도까지는 그들이 우리를 조금 이상하게 볼 수 있지만, 우리가 매우 진실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믿음이 크게 바뀌는 순간이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전쟁을 통해 빛이 승리하고 세상적인 심리전 방식을 버리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매번 하나님이 시키는 일만 할 때 사람들이 우리를 계속 자기 중심적이고 위선적이며 교활하다고 생각하고 믿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우리는 어둠으로 빛을 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이 올 때가 올 것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사탄과의 싸움은 우리와 함께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계속되는 싸움이기 때문에 이러한 수용을 이야기의 끝으로 보아서는 안됩니다.
민주적 리더십
"혁신은 리더와 팔로워를 구분합니다."
스티브 잡스
리더란 결국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리더가 무엇인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존재합니다. 리더가 무엇인지에 대한 믿음은 한 세대의 문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시기적절하게 변화합니다. 사람들은 삶이 강하고 지배적인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이라는 의미에서 리더십은 힘과 권력을 행사하거나 뛰어난 분석력을 소유하는 것이라는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냉정하고 강인한 마음 대신 강력한 마음을 가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 마음이 우리를 따라잡고 발목을 붙잡아 우리의 약한 약점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우리는 상황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항상 알 수 없는 순간과 장소에서 발생합니다. 리더는 기술이든 지식이든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리더는 선한 마음으로 한 팀이나 그룹이 서로 조화롭게 일할 수 있도록 이끄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부정성에 굴복하는 순간 마음이 변하기 때문에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은 매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동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진심 어린 마음의 힘을 가지고 통일의 방향성을 제시함으로써 선도적 인물이 되는 것이 포인트입니다. 진정성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큰 소리로 외쳐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정성일 것입니다. 리더가 직장 내 인간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모든 것을 자신의 방식대로만 밀어붙이려 하고, 내 방식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민주적 리더십이 아닙니다. 자유 국가에서는 자신이 선택한 방식이 법에 어긋나지 않는 한 어떤 방식으로든 이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부패한 공산주의 국가에서는 세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 기반한 합법적인 방법만이 존재할 것입니다. 무정부 상태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은 동료 팀원들이 "우리가 해냈다"는 국가가 부재한 상태에서 스스로 뭉치기를 공개적으로 바라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정의는 '사람에 의한 통치'로, 팀이나 그룹의 동료들이 우리를 리더로 뽑을 투표권을 갖고, 우리가 리더의 정당한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계속해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의미입니다. 사람들이 인간적인 실패를 통해 배우고 성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산주의 국가는 마음과 마음이 모두 사악하기 때문에 지배적 인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는 지도자가 시민들의 진정하고 깊은 사랑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우리는 열정과 행복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동료들에게 전하는 사랑과 보살핌은 그들이 우리가 마땅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우리를 고양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리더와 팔로워를 구분하는 혁신일 것입니다.
법과 권한
"모든 사회에는 그에 걸맞은 종류의 범죄자가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모든 사회가 원하는 종류의 법 집행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로버트 케네디
많은 사람들이 조현병 진단을 받은 모든 사람이 연쇄 살인범과 같은 폭력적이고 위험한 인물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또한 1인칭 슈팅 게임과 같은 폭력적인 게임을 하는 모든 어린이는 성장해서 범죄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모든 사람이 이런 예상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들은 정신 장애가 없는 일반인보다 정신적, 정서적으로 상황에 더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그러나 이 세계에서 얼마나 예민한지의 정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정신 전쟁의 본질은 사탄의 악에 기반하고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좋은 시간보다 훨씬 더 부정적인 결과를 불러 일으킵니다. 모든 사람의 기술과 지식이 비슷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심리전은 시작부터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모든 것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모든 것이 다음 사람에게 다음 사람에게로 퍼지는 방식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거대한 거미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면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 한 그 감정은 쌓이고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우리는 우리와 반대편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불이익을 당하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은 설계된 방식으로 인해 우리가 아무리 많은 사람을 상대하더라도 우리 편이 되기보다는 반대하는 사람이 훨씬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조현병 진단을 받은 사람 중 폭력성이 심한 사람이 학대에 휘말리면 사이코패스의 선을 넘은 것으로 보이는 법을 어기는 행동을 하게 됩니다. 혈액형이 성격 특성에 영향을 미친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범죄가 발생했을 때 형사들이 사람들을 심문하며 수사를 하는 것은 직업 자체가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원래 그렇기 때문에 말 그대로 누구라도 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사고방식입니다. 총기 난사범과 다른 중대 범죄자들은 세상을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어떤 법을 위반하는지는 다릅니다.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과 몸짓의 표현이 폭력으로 이어지는 것은 모두 부정적인 에너지가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은 내면에서 시작됩니다.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 범죄가 일어날지 알 수 없습니다. 큰 꿈을 꾸는 모든 일이 작은 것에서 시작하듯이 범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치 세상이 범죄자를 범죄자로 만들거나 범죄자가 스스로 범죄자가 되기로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범죄가 사라지지 않기 때문에 법과 법을 지키는 사람들이 항상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범죄 행위일 경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다음 행동의 선택이 옳지 않다고 여기는 관점에서 시작됩니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의견 차이는 어느 범위까지 보느냐의 문제일 뿐, 그 범위가 클수록 더 큰 문제로 느껴질 것입니다. 즉, 법이 없거나 법을 지키게 하는 권위가 없다면 세상은 혼란스러운 전쟁터로 변할 것입니다.